숄츠 총리의 독일, 메르켈 시대 접고 반중 노선으로 갈아타나

윤기은 기자
안나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이 지난 10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외무장관 회의 기자회견 중 발언하고 있다. 바르샤바|AP연합뉴스

안나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이 지난 10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외무장관 회의 기자회견 중 발언하고 있다. 바르샤바|AP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출범한 올라프 숄츠 독일 내각이 앙겔라 메르켈 전 정부와 달리 반중국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녹색당 공동대표이자 반중국 성향이 강한 아날레나 베어보크 외교장관이 그 선두에 있다. 그는 인권과 법치를 우선 순위로 두는 ‘가치 기반 외교’를 내세우며 중국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독일의 노선 변경으로 유럽연합(EU)이 미국 편을 들면서 미국과 중국간 갈등 양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은 지난 8일 공개된 숄츠 내각의 연정 합의서는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체제 경쟁자”로 묘사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는 “개선되고 활성화된” 관계라고 명시하고 있는 점과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이다. 더디플로맷은 이는 독일 새 정부가 중국 지도부와의 갈등을 감수하고 다른 EU 국가들의 대중국 정책과 함께 하려는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어보크 장관은 ‘가치 기반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상대 국가의 인권과 법치 상황에 따라 외교노선을 결정하겠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동일한 외교 방향이다. 베어보크 장관은 지난 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강제 노동 문제를 거론하면서 EU가 다시 중국산 제품의 수입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과 외교 관계를 대화로 이끌어 나가겠다”면서도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대해서도 “향후 몇주간 논의하겠다”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는 앞서 16년간 집권했던 메르켈 정권과는 확연히 다른 입장이다. 메르켈 전 총리는 신장 위구르 등 중국 당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눈을 감는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중국과 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재임기간 중국을 13번 방문했으며,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때도 독일 재계 인사들을 이끌고 방중했다. 미국이 중국 기업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다른 나라들에 압박을 넣었을 때 독일은 화웨이 사용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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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강해진 반중 여론도 대중국 정책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지난해 독일 시민의 중국 국가 이미지 비호감도가 71%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반면 지난달 조사에서 ‘미국이 가장 중요한 외교 파트너’라는 응답은 4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독일의 외교정책 변화로 미국·유럽 대 중국 간의 전선이 더욱 선명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베어보크 장관의 취임 뒤 EU는 중국에 강경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주요 7개국(G7)과 EU 외교장관들은 12일 G7 외무장관 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중국의 강압적 경제정책에 관해 우려한다”며 “홍콩, 신장,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상황과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 등 다양한 이슈와 문제에 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더디플로맷은 유럽을 향해 대중국 무역정책에 합류하라고 촉구해온 바이든 정부는 “소원을 이루게 됐다”고 평가했다. 유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행정부 당시 미국의 무역전쟁에 맞서 중국과 손을 잡았지만 이제는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베어보크의 반중 정책이 어느 단계까지 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이 무역 보복을 할 가능성이 남아있는 데다 독일과 중국 간 경제 협력 규모도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독일의 대중국 수출액은 1100억달러에 이르렀고, 약 5000개의 독일 기업이 중국에 진출해 있다. 숄츠 총리는 ‘포스트 메르켈’이 되겠다고 선언한 만큼 대중국 정책에서도 메르켈 시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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