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중화기 지원에 대한 독일 지식인들의 논쟁 ... 안보 관련 '세대 균열' 평가도읽음

박은하 기자
지난달 28일 독일 정부의 우크라이나 중화기 지원 결정을 비판한 지식인들의 공개서한을 게재한 페미니즘 잡지 엠마 웹사이트 화면. 엠마의 공개서한을 계기로 독일 지식인 사회에서 독일의 전쟁 참여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독일 정부의 우크라이나 중화기 지원 결정을 비판한 지식인들의 공개서한을 게재한 페미니즘 잡지 엠마 웹사이트 화면. 엠마의 공개서한을 계기로 독일 지식인 사회에서 독일의 전쟁 참여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독일 지식인들이 러시아의 공격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중화기를 지원하기로 한 정부 결정을 두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를 비롯한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원로 지식인들은 무기지원에 비판적 견해를 보이는 반면 녹색당의 40대 정치인들은 정부 결정을 옹호하고 있다. 이번 논쟁이 독일 지식인 사회의 세대균열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독일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게파르트 대공자주포 50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페미니즘 잡지 엠마에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무기지원을 자제하라고 요구하는 지식인 27명의 공개 편지가 실렸다. 엠마 창립자이자 1970년대부터 왕성하게 활동을 해온 페미니스트 지식인 알리체 슈바르처(80),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알렉산더 클루게(90)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러시아의 침공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대량의 중화기를 인도하면 독일 역시 전쟁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며 “이 전쟁이 핵전쟁으로 확산된다면 그 책임이 전적으로 침략자(러시아)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군비경쟁은 전 세계의 보건과 기후변화에 대응에도 치명적”이라며 무기지원 대신 휴전협상을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라고 주장했다.

사회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93)는 같은날 쥐트도이체차이퉁에 실린 기고문에서 무기지원에 소극적이었던 숄츠 총리의 태도가 ‘신중한 것’이라며 “정부가 자기확신에 찬 고발자들에게 공격받고 있다”고 평했다. 하버마스는 “서방은 딜레마적 상황에 있다”며 “우크라이나에 등을 돌리면 러시아는 다음 타깃을 노릴 것이며,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들면 핵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핵보유국과의 전쟁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궁극적으로는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 것을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에 깊은 공감을 표했던 녹색당 소속 안나레나 베어복 외교장관(42)을 두고는 ‘감정적 결정’을 했다고 표현했다.

엠마에 실린 서한과 하버마스의 기고가 공개되면서 독일 지식인 사회에는 논쟁이 불붙었다. 전 녹색당 정치인 랄프 퓌크스(70), 소설가 다니엘 켈만(47) 등 58명은 디차이트에 “숄츠 총리는 무기지원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을) 방어를 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유럽의 평화질서를 공격하고 국제법을 짓밟고 대규모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자는 누구든지 승자로서 전장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핵전쟁의 위험은 더 많은 군사적 모험을 장려하는 크렘린에 양보하는 방식을 통해 피할 수는 없다”며 “특히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은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독립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전범국이었기 때문에 전쟁과 가급적 거리둬야 한다는 주장과는 다른 접근이다.

베어복 장관은 8일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군축과 비무장주의는 페미니즘의 주요 요구사항이지만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위권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러시아군의 진격을 막지 못한다면 또 다른 도시가 마리우폴이나 부차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협상을 위한) 후퇴가 전쟁의 위협을 막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선명하게 갈린 지식인 사회의 의견은 세대균열을 드러낸다는 분석도 있다. 클루게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1945년 미군이 자신의 고향에 진주했을 때 전쟁이 끝날 것이란 생각에 기뻤다며 “전쟁이 끝난다면 항복도 나쁠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젊은 지식인들은 침략자로서 일으킨 전쟁과 피해자로서 겪는 전쟁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켈만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엠마 서한에 동유럽 친구들이 충격을 받는 것을 보고 서명을 결심했다”며 “2차대전 경험을 말하며 반전을 말하는 사람 가운데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후손이나 가족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버마스의 기고에 대해서는 “푸틴이 허락한 평화행동만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엠마 서한 참여자들의 평균연령이 76세이며 차이트 서한의 참여자는 54세라면서 차이트 서한 참여자가 문화적으로 더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중화기 지원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외교적인 평화정책을 앙시앙 레짐(구체제)으로 규정짓고 작별을 고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과거의 정책이 잘못됐으니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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