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식량 위기 앞에 선 우크라이나인들 “홀로도모르는 집단학살”

박은하 기자

전쟁 중 맞은 대기근 90주년…젤렌스키 “학살로 인정해야”

각국 정상 동조 속 독일 의회는 결의안 준비…학계선 ‘논쟁’

우크라이나 키이우에는 ‘홀로도모르 조각상’이 있다.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아 내린 비쩍 마른 소녀가 밀 이삭을 움켜쥔 손을 가슴에 포갠 채 맨발로 서 있는 모습이다.

홀로도모르는 이오시프 스탈린 체제의 소련이 집단 농장화를 추진하던 중 1932~1933년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대기근 사태를 말한다. 최소 450만명이 이 기간 중 굶어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우크라이나는 홀로도모르가 소련의 농업정책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소련 통치에 반발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스탈린이 고의로 일으킨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이라고 본다. 매년 11월 넷째주 토요일인 홀로도모르 기념일에는 많은 이들이 홀로도모르 조각상에 꽃과 빵을 놓으며 비극을 추모한다.

26일(현지시간)은 홀로도모르 90주년이었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 맞이한 홀로도모르 90주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과거의 참상을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현지 매체 키이우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홀로도모르 기념연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고의로 “식량 위기”를 일으켰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홀로도모르에 비유했다.

전쟁이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의 식량위기로까지 번지는 모습도 홀로도모르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벨기에, 폴란드 등 각국 정상을 초청해 홀로도모르 기념관을 참배하고, 우크라이나의 아프리카 곡물 수출을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20여개 국가들과 함께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의 기금을 마련해 에티오피아, 수단, 소말리아 등 식량 부족 위기에 처한 국가들에 우크라이나 곡물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독일 의회는 홀로도모르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하는 결의안 채택을 준비하고 있다.

홀로도모르가 제노사이드인지 여부는 학계의 논쟁거리이다. 기근은 소련 정부가 집단농장으로 내놓지 않은 자영농의 토지를 황폐하게 만들고 가축을 몰수하면서 발생했다. 제노사이드로 인정하자는 쪽은 소련 정부가 우크라이나인의 저항을 꺾기 위해 식량 배급을 일부러 해 주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외에는 미국, 바티칸,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16개국이 홀로도모르를 제노사이드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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