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그너 수장의 폭주’ 전사자 시신 사진까지 공개···권력투쟁 ‘점입가경’읽음

선명수 기자

러 용병기업 ‘와그너그룹’ 수장 프리고진

연일 러 군부 향해 십자포화

“의도적으로 탄약 안 줘”···전사자 사진까지 공개

“권력 다툼서 밀려나” 분석도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 ‘와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AFP연합뉴스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 ‘와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 권력층 내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와그너 그룹’의 수장이 국방부 장관을 향해 ‘반역자’라고 날을 세우는가 하면, 급기야 전사한 용병들의 시신 사진까지 공개하며 군 수뇌부를 향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와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이날 러시아 군사전문 블로거와의 인터뷰에서 국방부가 와그너 그룹 용병들에게 의도적으로 탄약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전사자 수십 명의 시신 사진을 공개했다. 전날 러시아 국방부가 탄약 미지급에 대한 프리고진의 폭로를 ‘사실무근’이라 일축하자, 이번엔 전선의 처참함을 보여주는 사진까지 동원하며 재차 비판에 나선 것이다.

프리고진은 사진 속 눈밭 위에 누워 있는 시신들이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전사한 용병들이라며 “이들은 이른바 ‘포탄 기아(shell hunger)’로 어제 죽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포탄만 있었다면) 전사자는 5분의 1로 줄었을 것이다. 이들의 죽음은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사진과 함께 와그너 그룹이 국방부에 탄약 지원을 공식 요청한 문서를 공개하며 “그들은 여전히 탄약 지원 승인을 보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민간군사기업 ‘와그너 그룹’ 본사 앞에 군복을 입은 용병들이 서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민간군사기업 ‘와그너 그룹’ 본사 앞에 군복을 입은 용병들이 서 있다. AP연합뉴스

프리고진은 전날에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통합사령관이 와그너 그룹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려 한다며 이는 “반역죄로 처벌할 만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방부 인사들이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을 이유로 와그너 그룹에 군수품 지원을 거부했고, 이 때문에 바흐무트에서 치명적인 병력 손실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프리고진의 폭로를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국방부는 와그너 그룹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은 채 “군 당국은 전투병 보급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며 “탄약 부족과 관련해 ‘자원 공격 부대’를 대변해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모든 진술을 전적으로 틀린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전투 부대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과 지원 체계 내부에 분열을 획책하는 시도는 비생산적이며,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 때 ‘권력 실세’ 부상했던 프리고진, 크렘린 눈밖에 났나

연일 수위를 높여가는 프리고진의 날선 반응은 러시아 내 권력 지형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용병의 대규모 참전으로 한 때 새로운 권력 실세로 부상했던 프리고진이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외식 사업가로 크렘린이 주관하는 각종 행사에 케이터링을 제공해 ‘푸틴의 요리사’라 불리는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후 와그너 그룹이 동부전선에서 일부 성과를 내며 러시아 내 권력 실세로 부상했다.

그러나 동부전선에서 누가 전훈을 세웠는지를 두고 정규군과 신경전을 벌이는가 하면, 군 수뇌부의 전술 실패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튀는 행보로 크렘린궁의 눈밖에 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에서 프리고진의 목소리가 커지자 그의 영향력의 억제하려는 크렘린과 국방부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을 앞둔 지난 21일 국정 연설에서 “부처 간의 어떠한 반목, 형식주의, 오해, 다른 터무니 없는 일들을 없애야 한다”며 ‘내부 갈등 종식’을 강조했다.

푸틴은 연설에서 러시아군의 전훈을 여러 차례 칭찬하면서도 와그너 그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국정 연설 자리에 프리고진은 참석하지 않았다.

‘푸틴의 요리사’로 불리며 한 때 권력 실세로 부상한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푸틴의 요리사’로 불리며 한 때 권력 실세로 부상한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앞서 크렘린은 지난달 프리고진과 밀착한 군 간부를 강등시키고, 교도소에서 와그너그룹의 용병 모집을 제한하는 등 그의 힘을 빼려는 듯한 행보를 보인 바 있다. 와그너 그룹은 그간 러시아 전역의 교도소에서 사면을 대가로 죄수들을 용병으로 모집, 이들을 전장에 대거 투입해 막대한 사상자를 내는 등 논란을 일으켰다.

러시아 국방부도 와그너 용병들이 군 당국에 무기와 보급품을 의존하면서도 국방부 통제를 거부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러시아의 독립 정치분석기관 R 폴리틱의 대표 타탸나 스타노바야는 최근 프리고진의 연이은 행보가 “군 수뇌부를 압박하면서 푸틴에게 닿기 위한 일종의 절망의 몸짓”이라고 논평했다.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의 군사 분석가 드미트리 쿠즈네츠는 “전쟁이 2년째에 접어들면서 러시아 군 내부의 권력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며 “전쟁이 러시아 정치를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징후”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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