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서 또 이민선 침몰···‘목숨 건 항해’ 급증한 까닭은

선명수 기자

‘튀니지→이탈리아’ 이주민 1년새 10배 급증

이탈리아 람페두사에 24시간 만에 2500명 유입

‘이민자 탄압’ 튀니지 정치 상황 영향

‘反이민’ 이탈리아 정부, 뱅크시 지원 구조선박 억류

지난해 8월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남쪽 지중해에서 에스트레아 난민들이 탄 보트가 전복돼 탑승자들이 헤엄치고 있다. 보트에는 어린이 2명을 포함해 에리트레아와 수단에서 온 이민자 40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스페인 구호단체 오픈암스에 의해 구조됐다. AP연합뉴스

지난해 8월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남쪽 지중해에서 에스트레아 난민들이 탄 보트가 전복돼 탑승자들이 헤엄치고 있다. 보트에는 어린이 2명을 포함해 에리트레아와 수단에서 온 이민자 40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스페인 구호단체 오픈암스에 의해 구조됐다. AP연합뉴스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을 태운 선박이 또 다시 지중해에서 침몰했다. 이민자 차별과 단속이 강화된 튀니지를 떠나 가까운 유럽 국가인 이탈리아로 향하려는 이민자들이 급증하면서 이들의 ‘목숨을 건 항해’도 이어지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BBC 등에 따르면 튀니지 해안경비대는 이날 북아프리카 지중해에 접한 튀니지 해안에서 이민선 2척이 침몰, 최소 29명이 숨지고 11명이 구조됐다고 밝혔다. 침몰한 이민선에는 사하라 사막 남부 아프리카 국가 출신 이민자 등이 타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승선 인원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아 실제 숨진 이들은 더 많을 수 있다. 튀니지 해안에서는 이틀 전인 24일에도 비슷한 사고로 최소 34명이 사망했다.

튀니지 해안경비대는 이날 지난 4일간 유럽으로 향하는 선박 80여척을 막고 이민자 3000여명을 구금했다고 밝혔다.

튀니지는 빈곤과 폭력을 피해 탈출한 사하라 이남 출신 이민자들이 많은 국가로, 유럽으로 건너가려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가장 많이 거치는 환승 지역 중 하나다. 튀니지 동부 스팍스 해변에서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 섬까지 직선거리가 140㎞에 불과해 이 경로를 통해 유럽으로 건너가려는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튀니지로 몰려들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올해 들어 튀니지에서 이탈리아로 건너간 이민자는 1만2000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00명)보다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탈리아 정부는 전날 람페두사 섬에 24시간 만에 튀니지발 이민자가 2500명 가까이 도착했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 튀니지를 탈출하는 이민자가 급증한 것은 튀니지 정부의 노골적인 ‘이민자 혐오’ 정책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국가안보회의에서 “사하라 이남 국가에서 튀니지로 불법 입국하는 것은 튀니지의 인구 구성을 바꾸려는 범죄 행위”라고 주장해 아프리카연합(AU)과 인권단체 등의 비판을 샀다.

대통령의 발언 뒤 튀니지 내 남부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인종차별적 폭력에 내몰리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단속도 강화됐다. 이로 인해 유럽행을 택하는 이민자들이 늘고 있고, 코트디부아르와 기니 등 일부 국가는 안전 문제로 튀니지 내 자국민들을 본국으로 송환하기도 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가 자금을 지원하는 난민 구조선박 루이즈 미셸호가 26일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 항구에 정박해 있다. 이탈리아 당국은 이 선박이 자국 규정을 어기고 난민 구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이날 선박을 압류했다. EPA연합뉴스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가 자금을 지원하는 난민 구조선박 루이즈 미셸호가 26일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 항구에 정박해 있다. 이탈리아 당국은 이 선박이 자국 규정을 어기고 난민 구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이날 선박을 압류했다. EPA연합뉴스

강도 높은 반(反)이민 정책을 펴고 있는 이탈리아 우파 정부는 이민자 급증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2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튀니지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최근 이주민들의 입국이 늘어났다며 “튀니지가 붕괴하면 90만명이 이탈리아로 올 수 있으며 이탈리아로서는 이들을 환영할 수 없다”고 며 EU 국가들의 협력을 요청했다.

최근 이탈리아 정부는 국제구호단체가 운영하는 난민 구조선의 구조 활동 횟수를 1회로 제한하는 등 이른바 ‘난민 구조선 규제법’을 도입해 국제적인 비판을 사기도 했다. 종전까지 난민 구조선들은 지중해에 며칠간 머무르며 여러 차례 구조를 통해 수백여명을 배에 태운 뒤 이탈리아 정부에 입항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활동해 왔지만, 새 법은 지중해에 표류하는 난민을 한 번 구조하면 지체없이 지정된 항구로 입항하도록 했다. 또 난민 구조선을 운영하는 단체가 구조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 새 법에 따라 지난달 20일간의 활동 정지와 벌금이 부과된 국경없는의사회는 “생명을 구했다는 이유로 처벌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탈리아 당국은 26일에도 영국의 그래피티 예술가 뱅크시가 자금을 지원하는 구조선 ‘루이즈 미셸’호가 이탈리아 규정을 어기고 구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람페두사 항구에 배를 억류하고 루이즈 미셸호가 구출한 이민자 180여명을 구금했다. 루이즈 미셸호 활동가들은 트위터에서 “람페두사 섬 앞에 조난 당한 수십 척의 배가 있지만 (배가 억류돼) 도움을 줄 수 없었다”며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탈리아 서남부 해안에서는 지난달에도 난파 사고로 난민과 이주민 70여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지중해 중부에서 선박 사고로 2만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Today`s HOT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400여년 역사 옛 덴마크 증권거래소 화재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장학금 요구 시위하는 파라과이 학생들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케냐 의료 종사자들의 임금체불 시위 2024 파리 올림픽 D-100 솔로몬제도 총선 실시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