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사도광산, 내달 1일 각의 승인 후 세계유산 신청할 것" 한국 반발에도 추천 강행

김유진 기자

일본 정부가 28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이 이뤄진 사도(佐渡)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추천하기로 했다. 일본이 2015년 ‘군함도’가 포함된 근대산업시설 유산에 이어 또 다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강행할 경우 한·일 간 과거사 갈등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관련 절차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이날 저녁 총리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도광산을 내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공식 후보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기시다 총리는 “올해 신청해서 조기에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등재 실현에 지름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기시다 총리는 이날 오후 외무성, 문부과학성 등 관계 부처 협의를 갖고 사도광산을 세계유산 후보로 추천하겠다는 방침을 굳혔다고 NHK 방송이 보도했다.

기시다 총리는 다음달 1일 열리는 각의에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후보 추천을 승인한 뒤, 유네스코에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음달 1일은 내년 세계유산 등재를 희망하는 각국 정부가 유네스코에 공식 후보를 추천하는 마감일이기도 하다.

기시다 총리는 특히 사도광산 등재를 위해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역사적 경위를 포함한 다양한 논의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유네스코 무대에서 전개될 수 있는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를 둘러싼 한·일 간 치열한 외교전에 대비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그러면서 “한국의 의견은 알고 있고, (한국과) 냉정하고 정중한 대화를 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이는 지난해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국가가 있으면 심사 절차를 중단하고 당사국간 대화를 촉구하는 지침이 채택된 점을 의식한 발언인다. 일본 정부는 앞서 위안부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막기 위해 이같은 제도개선 조치를 주도한 바 있다.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후보 추천 여부는 지난달 28일 일본 문화청 문화심의회가 사도광산을 후보로 올린 이후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한 때 한국 정부의 강한 반발과 실제 등재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고려해 일본 정부가 추천을 보류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이달 중순까지만 해도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 등은 한국의 반발을 염두에 든 듯 ‘등재 실현을 위한 효과적인 대응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집권 자민당과 극우 성향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사도광산 후보 추천을 보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커지자 기시다 내각은 결국 ‘추천 강행’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앞장서서 추천 강행 여론에 불을 지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7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한국 등이) 역사 전쟁을 걸어온 이상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내년으로 보류하면 등록 가능성이 높아질까?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당내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수장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베 전 총리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한국에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면 7월 참의원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극우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무조사회장도 “추천을 보류하면 (1910년) 한·일 합방에 의해 같은 일본인으로서 전시에 일본인과 함께 일한 한반도 출신자에 대해 잘못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전달할 수 있다”는 억지 주장까지 폈다.

이에 최근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이 사도광산과 관련 “한국에 대한 외교적 배려를 할 것은 전혀 없다”고 언급하는 등 추천 보류 기조와 사뭇 다른 발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이 2023년 가을부터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올해가 사도광산 등재를 추진할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에도 시대 금광으로 유명한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철, 아연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활용한 곳이다. 니가타현에 위치한 사도광산에는 최소 1200~2000명의 조선인이 동원돼 강제노역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 결정에 강한 유감을 나타내고 등재 추진을 중단하라고 엄중하게 촉구했다.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지난 7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관련 위원회 결정 불이행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한 바 있다”며 “일본 정부가 2015년 세계유산 등재 시 스스로 약속한 후속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선행돼야 함을 재차 강조한다”고 밝혔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 등 근대산업시설 유산 등재 당시 조선인의 강제노역 등 전체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6년여가 흐른 지금까지도 일본은 이같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고, 유네스코 측은 일본 정부에 약속 이행을 강력 권고해왔다.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 내부 모습. 연합뉴스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 내부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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