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적 총무성에도···일본, 동성커플 주민표 ‘남편’ 허용 지자체 늘어

김희진 기자
일본 삿포로고등재판소는 지난 3월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은 민법 등의 규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법원 앞에 모인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한 시민이 “동성혼을 합법화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 삿포로고등재판소는 지난 3월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은 민법 등의 규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법원 앞에 모인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한 시민이 “동성혼을 합법화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남편’이나 ‘아내’ 표기를 동성 커플의 주민등록 서류에 적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일본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총무성은 실무상 어려움을 이유로 이런 조치에 난색을 보였지만, 법률이 보호하지 못하는 동성 커플의 권리 사각지대를 지자체가 메우려는 시도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도치기현 도치기시가 이 지역에 사는 동성 커플의 주민등록(일본 주민표) 서류에 서로의 관계를 ‘동거인’이 아닌 ‘남편’ 혹은 ‘아내’로 기록하는 것을 8월부터 허용한다고 9일 보도했다. 규슈 나가사키현 오무라시가 지난 5월 이런 표기법을 처음 허용해 주목을 받은 후 같은 조치를 취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도치기현 가누마시, 가가와현 미토요시 등에 이어 도치기시가 6번째 사례다.

일본도 한국처럼 동성 간 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지만 250여개 지자체는 동성 커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했다. 주택이나 병원 관련한 절차에서 동성 커플을 가족으로 대우하는 등 일정한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다. 다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오무라시의 첫 시도는 동성 커플이 사회보장제도 보호 범위로 들어오는 데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총무성은 그러나 회의적인 입장이다. 마쓰모토 다케이키 일본 총무상은 이날 각의(국무회의) 후 기자회견애서 “실무상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오무라시가 해당 조치를 시행한 후 총무성에 문의한 데 대해 처음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남녀 간 사실혼 커플과 달리 동성 커플은 여러 사회보장제도의 보호 대상으로 인정되지 않는데, 바뀐 표기법에 따르면 주민등록 서류상 이를 구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총무성 측 설명이다.

다만 총무성은 오무라시에 “주민표 기재 자체는 지자체가 판단하는 일”이란 취지로 설명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오무라시 시장은 제도를 수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누마시, 미토요시 역시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자체 재량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한 제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도입 검토 중인 지자체는 총무성 입장에 영향받을 가능성도 있다. 도쿄도 세타가야구는 총무성 입장을 고려해 법적 조언을 구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에 전했다.

스즈키 히데요 일본대학 교수(행정법)는 아사히신문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남녀 간 사실혼과 달리 (동성 커플에게) 차별적 취급이 발생하고 있는 현상을 신속히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대법원은 지난 3월 동성 커플도 범죄피해자구조금 지급 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첫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초당파 일부 의원들은 이를 토대로 다른 법령에서도 동성 커플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선 동성 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할 것인지를 두고 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동성 커플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을 심리 중이다.

1심은 동성 커플인 두 사람을 사실혼 관계로 인정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반면 2심은 사실혼 관계 커플과 달리 동성 커플에 대해서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한다며 1심을 뒤집었다. 항소심 판결은 파트너십 제도조차 도입되지 않은 한국에서 동성 커플의 사회보장제도상 권리를 법원이 처음 인정한 사례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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