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도 풀지 못한 ‘인종 간 경제 불평등’ 해결할 수 있을까

김윤나영 기자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의 한 쇼핑몰 앞에서 14일(현지시간) 시민들이 약탈과 폭동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소웨토 | AFP연합뉴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의 한 쇼핑몰 앞에서 14일(현지시간) 시민들이 약탈과 폭동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소웨토 | AFP연합뉴스

흑인 인권운동 동지였던 주마를 퇴진시키고 대통령에 선출
코로나19로 불만 폭발한 ‘백인 중심 경제’ 개선 최우선 과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제이콥 주마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폭동으로 번졌다. 부패와 적폐 청산이란 고리로 엮인 시릴 라마포사 현 대통령과 주마 전 대통령의 관계는 폭동의 정치적 배경이다. 두 사람은 한때 넬슨 만델라의 뒤를 이어 흑인 인권운동을 한 동지였지만, 라마포사 정권이 주마 전 대통령의 부정부패를 수사하면서 갈라섰다. 두 사람은 만델라가 남긴 정치 민주화의 혜택을 받았지만, 인종 간 경제 불평등이라는 숙제도 받아 안았다. 특히 코로나19로 빈곤이 심해지고 전국에서 약탈까지 벌어지면서 라마포사 대통령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부패와 적폐 청산으로 갈라서다

만델라(왼쪽)와 라마포사. 연합뉴스

만델라(왼쪽)와 라마포사. 연합뉴스

주마 전 대통령은 남아공에서 가장 큰 종족인 줄루족 출신이다. 백인들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영향으로 초등학교를 5년밖에 못 다녔다. 17세에 만델라가 주도하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입했다. 만델라는 화해를 강조했지만, 주마는 무장투쟁의 길을 걸었다. 백인 기득권을 비판하는 과감한 언사로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1999년엔 만델라의 후임인 타보 음베키와 함께 대선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통령에 당선됐다. 부정부패 혐의가 불거진 음베키 전 대통령을 2008년 몰아내고, 2009년부터 9년간 대통령을 지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만델라 전 대통령이 “새로운 세대의 가장 재능 있는 지도자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했다가 노동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다. 백인 통치체제에 저항하며 1987년 광산노조 파업을 주도했다. 1997년 집권 ANC 당대표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뒤 정계를 떠나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대박이 났다. 맥도널드와 코카콜라 등에 투자해 자산 규모 4억5000만달러(약 5164억원)의 갑부가 됐다.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와 2012년 ANC 당대표 선거에 나섰고 주마에 이어 2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2014~2018년 주마 대통령 시절 라마포사는 부통령으로서 함께 정권을 운영했다.

두 사람의 사이가 본격적으로 나빠진 건 2016년 주마의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부터다. 국민권익보호위원회는 인도계 재벌인 굽타 가문이 주마 전 대통령과 결탁해 내각 인선과 국영기업 인사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전국에서 주마 전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가 열리자, 당시 부통령 라마포사는 ‘반주마’ ‘반부패’ 슬로건을 내걸고 이듬해 ANC 당대표에 당선됐다. 2018년엔 주마를 하야시키고 대통령에 선출됐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집권 후 본격적인 적폐 청산에 나섰다. 주마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부정부패 등 각종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그는 지난 7일 국정조사에 출석하라는 법원 명령에 따르지 않아 법정모독죄로 체포됐다.

■근본 문제는 빈곤과 불평등

주마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며 지난 7일 시작된 시위는 약탈 사태로 번졌다. 72명이 사망했다.

전·현직 대통령의 대립이 촉발시킨 측면이 있지만, 이번 소요 사태의 근본 원인은 빈곤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 30세 남성은 이날 AFP통신에 “줄루족은 주마를 위해 싸우겠지만, 우리가 거리로 나온 이유는 가난과 실업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라마포사 정부는 불평등 해결이라는 숙제를 받아 안았다. 이는 만델라 정권이 이루지 못한 미완의 개혁이기도 하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으로 존경받았지만, 백인 중심적인 기존 경제체제를 묵인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통치가 끝난 1994년 소수의 백인들이 전체 농지의 85.1%를 갖고 있었다. 당시 만델라가 이끌던 ANC는 5년 안에 백인 소유 농지의 30%를 흑인 소작농들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유상 매입으로 돌려준 토지는 10%에 그쳤다.

라마포사도 집권 직후 토지개혁과 경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2018년엔 백인 소유 농장을 몰수해 흑인에게 나눠줄 수 있도록 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공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빈곤층이고, 실업률은 32.6%에 달한다.

AP통신은 “코로나19 팬데믹이 경제 상황을 악화시켰지만 빈곤과 실업은 이미 나빴다”며 라마포사 대통령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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