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시작점 튀니지, 민주주의 흔들…대통령, 시위 격화에 총리 해임

윤기은 기자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휩쓴 반 독재정권 시위 ‘아랍의 봄’ 시작점인 튀니지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은 경제난과 코로나19 부실 대응 등으로 대규모 시위가 열린 직후 의회의 수반인 총리를 해임시켰다. 사이에드 대통령의 일방적 조치에 제1당이 반발하면서 튀니지 정계에서 분열과 혼란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튀니스 대통령 집무실에서 국민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튀니스|로이터연합뉴스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튀니스 대통령 집무실에서 국민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튀니스|로이터연합뉴스

튀니지 언론 라프레세드튀니지는 25일(현지시간) 사이에드 대통령이 헌법 제80조에 명시된 대통령 권한을 발동해 제1당 엔나흐다 소속 히셈 메시시 총리를 해임시키고 의회의 기능을 30일 동안 정지시켰다고 보도했다. 의회 정지에 따라 국회의원들에 대한 면책 특권도 사라지게 된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자신이 임명하는 총리의 도움을 받아 행정부를 운영할 것이라며 “헌법은 의회 해산을 허용하지 않지만, 그 기능이 정지되도록 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구체적인 해임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튀니지 시민들이 25일(현지시간) 튀니스 거리로 나와 정부의 코로나19 부실 대응과 경제난에 불만을 표출하기 위한 시위를 열고 있다. 튀니스|로이터연합뉴스

튀니지 시민들이 25일(현지시간) 튀니스 거리로 나와 정부의 코로나19 부실 대응과 경제난에 불만을 표출하기 위한 시위를 열고 있다. 튀니스|로이터연합뉴스

사이에드 대통령은 수도 튀니스 등 튀니지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열린 이후 메시시 총리를 해임했다. 튀니지 시민 수천명은 지난 주말 동안 높은 실업률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난, 정치인 부패 등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엔나흐다와 메시시 총리의 코로나19 방역 정책 실패를 비난하며 서부 토루즈 당사에 불을 질렀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25일 시위대를 향해 “폭력 시위를 지속하면 발포하겠다”고 경고했다.

튀니지 사회는 코로나19 확산과 시민들의 생활고가 이어지며 혼란을 겪고 있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은 “우리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정부는 전염병을 통제하지도, 백신을 제공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튀니지는 아프리카 대륙 국가 중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한 나라로, 7월 들어 일일 확진자 수가 9000명대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1만8000명 이상이 코로나19로 사망하기도 했다. 튀니지 정부는 지난 1분기 실업률을 17.8%로 집계했다.

정계에서는 2019년 무소속 사이에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 권력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자 메시시 총리는 지난 20일 파우지 메흐디 보건부 장관을 해임시켰다. 이에 사이에드 대통령은 다음날 행정부 소속인 군대가 코로나19 대응을 전적으로 맡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알자지라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사이에드 대통령이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군사·외교 통솔권 이외에 다른 권한을 확장하려는 시도”라고 전했다.

대통령의 총리 해임 조치에 앞으로도 튀니지 정계의 분열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장이자 엔나흐다 당대표인 라체드 가누치가 나흐다는 총리 해임에 대해 “헌법에 반하는 쿠데타”라며 반발했다. 튀니지 군대는 메시시 총리 해임 이후 의회 앞에 병력을 배치해 가누치 의장의 의회 출입을 막았다. 알자지라는 사이에드 대통령의 이번 조치가 민주화 이후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삼권 분립을 지키려는 튀니지 민주주의에 큰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튀니지는 2011년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쓴 ‘아랍의 봄’의 발원지이자 아랍의 봄 운동이 일어난 지역 중 드물게 민주화에 성공한 국가로 꼽혀왔다. 튀니지의 한 20대 노점상이 막막한 생계를 호소하며 분신자살한 사건으로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며 23년간 독재 통치를 해온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정권이 막을 내렸다. 아랍의 봄으로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과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최고지도자 등 다른 나라의 독재 정권도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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