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동조 이슬람 성직자들 “여학교 다시 문 열어야”

박은하 기자
아프간 여성들이 지난달 21일 시민 사회, 정치인, 부족 원로들이 조직한 기념식에 모여 탈레반에게 여성 중등교육을 재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카불|EPA연합뉴스

아프간 여성들이 지난달 21일 시민 사회, 정치인, 부족 원로들이 조직한 기념식에 모여 탈레반에게 여성 중등교육을 재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카불|EPA연합뉴스

탈레반 재집권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중단된 여성 중등교육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탈레반에 동조해 온 이슬람 성직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이슬람 성직자들이 여·중고생들의 등교를 다시 허용해야 한다며 탈레반 강경파 지도자들을 설득하고 있다고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수도 카불과 북부 발크, 남부 팍티아주 등지의 아프간 성직자들이 탈레반에게 여성교육 재개를 설득하는 편지를 보내고 있다. 앞서 파키스탄 종교학자 위원회도 7학년 이상 소녀들의 학교를 다시 열어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탈레반과 연계된 성직자들이 여성교육을 허용하라고 목소리를 낸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다만 이슬람 성직자들은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한 여성교육이 필요하며, 소녀들은 얼굴을 가린 채 남녀분리 상태에서 교육을 받고, 탈레반이 복장규정 준수 여부 및 수업 내용 등을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간에서는 현재 한국의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7~12학년 여성 교육이 금지돼 있다. 탈레반은 남학생과 초등학생에 이어 이번 학기부터 여중·고생의 등교도 재개한다고 약속했으나 새 학기 시작일인 3월23일 복장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돌연 등교 재개 조치를 취소했다. 당시 교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돌아서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유엔난민기구, EU, 유럽 및 미국 특사 등 국제사회도 일제히 탈레반의 조치를 비판했다.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은 탈레반의 조치가 이슬람의 대외적 이미지에 먹칠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프간 현지매체 톨로뉴스에 따르면 이슬람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종교학자인 파키스탄의 성직자 무하마드 타키 우스마니는 지난달 “탈레반의 여성교육 금지 조치가 적들의 선전 도구가 됐다”며 “이슬람이나 이슬람에미리트(아프간)가 여성인권에 반한다는 인상을 없애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탈레반 당국에 보냈다. 헤라트주에서는 다르 알-울룸 신학교 교장 잘릴룰라 아쿤자다가 탈레반에 요청해 일부 여학교가 문을 열었다. 아쿤자다의 아들 무알라나 무히불라는 “아버지는 이슬람이 여성에 적대적이라는 인식을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여성이 교육을 받으면 더 나은 자녀를 키울 수 있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NPR에 말했다.

아프간 주민들이 여성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종교 지도자들이 움직이는 이유이다. 국제앰네스티의 아프간인 활동가인 사미아 하미디는 “여성 교육에 대해 과거와 큰 인식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 일부는 가족들의 경제활동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지난 20년 간 여성들도 교육을 받아서 가능했던 일”이라며 “거의 모든 가정에 10대 딸이 있고 이들 모두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NPR은 탈레반 고위 관료들의 라마단 만찬 모임에서 ‘여성교육 금지 조치는 주민들이 탈레반이 지난 20년 간 아프간의 변화에 무지하다고 생각하게끔 한다’는 불만이 나왔다고 전했다. 아프간 교육부 대변인 아지즈 아흐마드 라이안은 “탈레반의 허가가 떨어지면 여학생들을 다시 학교로 데려올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 탈레반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시라주딘 하카니 내무부 장관, 압둘 바키 하카니 교육부 장관, 탈레반 공동 설립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 부총리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은 여학생 등교 재개에 찬성하지만 압둘 하킴 하카니 대법원장과 강경파 성직자들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위기감시그룹의 분석가 이브라힘 바히스는 “탈레반 강경파들이 물러설지는 불분명하다”면서도 “이슬람 성직자들의 요구는 탈레반 입장에서 페미니스트, 율법학자, 소녀들의 목소리보다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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