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을 쓰지 않은 채 지하철에 탔다가 도덕경찰에 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이란 10대 여성이 결국 뇌사 판정을 받았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BBC 등에 따르면, 이란 국영 IRINN 방송은 이날 “아르미타 가라완드(16)의 최근 건강 상태에 대한 후속 조사 결과,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뇌사 상태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가라완드는 지난 1일 테헤란 지하철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지금까지 테헤란 파르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당시 아르미타는 히잡을 쓰지 않은 채로 다른 여성 두명과 함께 지하철에 탑승한 이후 곧바로 쓰러졌다.
목격자들은 가라완드가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쿠르드족 인권 단체 헹가우 또한 도덕경찰 여성 대원들이 가라완드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폭력이 가해졌다고 주장했다. 헹가우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가라완드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산소호흡기로 추정되는 장치를 부착한 채 병원에 누워 있었다.
반면 이란 당국은 가라완드가 지병으로 쓰러졌다고 주장했다. 폭행은 없었고, 머리의 상처는 아르미타가 저혈압으로 실신해 쓰러지면서 머리를 부딪쳐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사건의 핵심 단서인 지하철 내부의 영상이 공개되지 않아 의혹은 커지고 있다. 이란 당국이 공개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가라완드가 탑승하는 모습과 이후 다른 승객들이 의식을 잃은 가라완드를 안고 나와 플랫폼에 눕히는 장면만 담겨 있다.
사건의 경위와 당국의 해명이 지난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구금됐다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의 사례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에도 이란 당국은 아미니가 지병으로 숨졌다고 주장했으나, 아미니의 의문사는 이란 전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바 있다.
시위는 현재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지만 정부에 대한 불만이 사그러들지 않자 이란 당국은 단속과 통제 강화에 나서고 있다. 최근 이란 혁명법원은 아미니 의문사를 보도한 여성 언론인 2명에게 징역 12~13년을 선고했다. 이들에게는 “적국인 미국 정부와 협력한 죄, 국가안보에 반하는 행동을 한 죄, 반체제 선전을 한 죄”가 적용됐다.
앞서 올해 노벨평화상은 이란 여성의 인권과 자유를 위해 투쟁해 온 나르게스 모하마디(51)에게 돌아갔다. 모하마디는 20여년 간 이란 당국에 13차례나 체포되면서도 굴하지 않은 이란의 대표적 인권운동가이자 반정부 인사다. 고 마흐사 아미니도 지난 19일 유럽의회 ‘사하로프 인권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