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200일 인터뷰
“자기 생존 위해 무참히 가치 훼손한 세력들”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는 ‘회복 탄력성’ 보유
이란·이스라엘 모두 긴장과 갈등이 유익한 상황
피해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연대 의식 가져야”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23일(현지시간) 200일째를 맞았다. 휴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총력전이 펼쳐졌지만, 오히려 이스라엘과 이란의 직접 충돌로 비화하며 중동 지역 긴장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전망도 어둡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의 반대에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라파에 지상군을 투입하겠다고 천명했고, 이를 제어해야 할 유엔 등 국제기구는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그사이 가자지구에선 3만5000명에 가까운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220만명의 가자지구 주민 대부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에 처했다.
중동 전문가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23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연구실에서 진행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기성 정치권을 향해 “자기 생존을 위해 지켜야 할 가치를 무참히 훼손하는 극단의 정치 세력을 이대로 두고 봐야 하는가에 대한 분노가 생긴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선 “상상할 수 없는 포석을 갖고 계속 생존 게임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대해 ‘연대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 교수는 한반도 상황이 중동과 다르지 않다면서 “단순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동정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내 문제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소식을 들었을 때 심정은.
“무척 놀랐다. 미증유의 사건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항상 로켓 등으로, 그러니까 눈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공격을 했다. 이번엔 이스라엘 영토에서 사람을 직접 조준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건국 이후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이 고립돼 있다는 정서가 있고 공격받는 것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피습에 대한 보복과 응징의 수위가 높다. 이스라엘 성정상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불행히도 그렇게 됐다.”
-전쟁은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는가.
“예상대로다. 하지만 처음엔 국가 대 국가의 분쟁은 일어날 가능성이 적다고 봤다. 이 지역에서 확전을 바라는 국가는 없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란과 이스라엘 모두 공포 느꼈을 것”
-이란과 이스라엘의 ‘그림자 전쟁’은 끝난 건가.
“전례가 없는 본토 공격을 주고받았지만, 계속 충돌하기엔 양쪽 모두 부담이다. 그림자 전쟁 구도는 유지될 거다. 다만 한 번 경험했으니 다시 부딪히기 쉬운 상태가 된 거다.”
-누가 승자인가.
“둘 다 승자다. 우선 이란이 자국 영사부 공격에 대한 보복을 감행하는 과정에서 이라크·레바논·시리아·예멘과 이란 본토 등 다섯 곳에서 미사일이 발사됐다. 5개 발사 지점과 공역, 탄착점 등이 완벽히 조율된 공격이었다. 이스라엘로선 두려운 상황이다. 타격해야 하는 원점이 다섯 군데라는 의미다. 더 큰 비용과 노력을 들여 대공망을 구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란 방공 시스템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이란도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작심하면 미사일 1~2발로 이란의 가장 아픈 부분을 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추가 충돌 가능성은.
“모두 자제하는 분위기임엔 틀림없다. 불안한 부분은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 모두 안정과 평화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긴장과 갈등이 두 정부엔 모두 유익하다. 그러니 해결책을 찾기보다 일정 정도의 긴장이 유지되길 바란다. 방 안에 가스가 계속 차 있는 느낌이다. 작은 불씨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친이란 세력에도 변화가 있을까.
“국제사회는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을 통해 하마스, 레바논 헤즈볼라 등 무장세력이 이란의 확실한 통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란은 지금까지 친이란 세력이 도발할 때마다 우리가 시킨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이러한 이란 주장의 신뢰도가 떨어졌다. 완벽하게 조율된 공격이었다.”
-미국·유럽연합(EU)이 이란을 추가 제재한다. 어떤 여파가 있을까.
“제재 자체가 이란을 뼈아프게 하진 않을 것이다. 이란은 미국 제재만 40년 넘게 받아왔다. 제재 자체보다 이란 국민 처지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할 때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석유도 있고, 천연가스도 있고, 위대한 페르시아 문명의 후예인데 정상적으로 국가를 운영했다면 주요 20개국(G20)은 너끈히 들어갈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물음이다. 왜 우리가 전 세계 공공의 적이 됐느냐. 경제가 어려워서 한 달에 한 번씩 양고기도 못 사 먹고 있는 판에 하마스 등에 무기를 대줘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체제가 답하기가 어렵다.”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둘 사이엔 회복 탄력성이 있다. 복원이 안 되는 관계가 아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안보 지원은 계속될 것이고 더 강화할 수도 있다. 다만 화학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본다. 미국의 젊은 세대, 특히 민주당 지지층에선 왜 이스라엘을 계속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생겼다. 인권과 자유가 국제 질서의 원칙인데 파시스트 행태를 보이는 이스라엘 극우 내각을 왜 우리가 지켜줘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향후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아랍계·유대계 유권자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랍계와 유대계 모두 바이든의 소위 집토끼였다. 그러니 설명을 해야 한다. ‘현재 이스라엘 극우 연정은 이례적인 현상이고 미국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다만 이스라엘 유권자가 선택한 정부이기 때문에 이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가 미국의 원칙에 어긋날 땐 엄중하게 이야기하겠다’ 정도의 자세를 취할 것이다.”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시 전쟁 향방은 어떻게 될까.
“예측이 어렵다. 오히려 바이든은 확실한 친이스라엘이다. 네타냐후 행태가 미국 가치와 맞지 않기 때문에 압력을 넣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제기된 이스라엘 정권 교체 주장도 이스라엘이 미워서가 아니라 애정을 갖고 있어서 나왔다고 본다. 트럼프는 이 문제에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있다. 관성적으로 ‘트럼프는 당연히 이스라엘 편을 들겠지’라고 말하기엔 조금 거리낌이 있다. 다만 유대계인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영향력이 작동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확률상 그럴 가능성이 더 커 보이긴 한다. 국제 정치에선 불가측성이 가장 위험하다.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함이 있다.”
“네타냐후, 트럼프 당선에 모든 베팅 할 것”
-궁지에 몰렸던 네타냐후 총리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한 번도 집권하지 못한 소수 극우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며 부활했다. 그리고 기존 리쿠드당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선택을 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생존 이상의 가치는 없지 않나. 그는 앞으로도 자기가 살아남기 위한 수를 계속 쓸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 정치인 가운데 네타냐후의 생존 본능을 따라갈 인사는 없다. 상상할 수 없는 포석을 갖고 계속 생존 게임을 할 것이라고 본다. 그는 트럼프 당선에 모든 베팅을 할 것이다. 트럼프가 되는 순간 ‘전 세계에서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지도자는 나밖에 없다’고 말할 것이다.”
-가자지구 전쟁의 휴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내세운 조건에 접점이 없다. 이스라엘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까지 이 상황을 끌고 갈 가능성이 크다. 네타냐후는 가자지구 하마스 최고지도자 야히야 신와르 제거와 유의미한 인질 석방 정도는 달성해야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전까진 공격을 멈추기 어렵다.”
-유엔 등 국제기구 무용론이 제기된다.
“없는 것보단 낫다. 이스라엘은 원래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즉각 휴전 결의안이 가결된 상황은 이스라엘엔 부담이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우리 길을 가겠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미국이다. 미국도 국제사회 여론이 나빠지니 즉각 휴전 결의안에 (거부권이 아닌) 기권표를 던지지 않았나. 미국은 이를 레버리지(지렛대)로 삼고 있다. ‘너희를 이렇게까지 막아주고 있는데 가자지구 라파 공격할 거야?’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그 효과를 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유엔은 여전히 이런 힘을 갖고 있다.”
-혼란을 틈탄 이슬람국가(IS) 등장도 문제다.
“작정하고 세상을 망가뜨리겠다고 나선 세력을 근절할 방법은 없다. 국제사회엔 큰 도전이다. 하지만 오히려 IS 문제 앞에서 진영은 무의미하다. 국제사회가 연대할 수 있다.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가 극심하다.
“비극이다. 가장 걱정되는 지점이 가자지구 라파다. 이스라엘을 변호하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이스라엘이 라파에 집착하는 이유는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140만명이 라파로 내려갔는데 하마스 대원이 껴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거다. 라파를 타격하지 않으면 지난 6개월간의 모든 작전이 무위로 돌아가는 셈이다.”
-하마스 절멸은 불가능한 목표 아닌가.
“불가능하다. 이번 기회에 가자지구를 쓸어버리고 싶은 본능이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엔드게임(end game)은 없다. 하마스를 몰살했다고 해도 그다음엔 어떻게 되는 건지에 관한 질문이 남는다. 세 가지 옵션밖에 없다. 첫째는 가자지구 220만 주민이 모여 투표하는 거다. 이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지난 20년간 하마스 통치만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럼 누가 뽑히겠나. 하마스 2.0이다. 두 번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가자지구를 관리하는 건데, 가자지구 주민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거다. 이스라엘에 부역하면서 호화 생활을 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 극우주의자 주장처럼 가자지구 주민을 이집트 시나이반도 등으로 몰아내는 방법이다. 이들은 ‘시나이반도에 사람도 없는데, 국제사회가 캠프 만들어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는 21세기 최대 인도주의 범죄가 될 것이다.”
-미국이 라파 지상 작전을 막을 수 있을까.
“예측하기 힘들다. 바이든이 뒤에선 훨씬 강한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런데 네타냐후가 하도 말을 듣지 않으니까 언론 등에 흘리기 시작했다고 본다. 이스라엘엔 네타냐후만 있는 건 아니다. 연정 내에도 중도·진보 인사들이 있다. 계속 이렇게 가다간 고립무원이 될 거라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마스도 비판받는다.
“나는 이스라엘의 비대칭적 응징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하마스도 참 밉다. 자신들이 지켜야 할 사람들을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 3만4000명이 죽었다. 하마스가 어떻게 팔레스타인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똑같은 맥락에서 이스라엘 극우 연정도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를 망쳐놨다. 자기 생존을 위해 지켜야 할 가치를 무참히 훼손하는 양쪽 극단 정치 세력을 이대로 두고 봐야 하는가에 대한 분노가 생긴다.”
“전쟁 희생자에게 연대의식 가져야”
-두 국가 해법 실현은 가능한가.
“두 국가 해법이 세상에 나올 때, 일각에선 이미 죽은 계획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두 국가 해법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그것 말고는 답이 없다. 평화를 위해선 팔레스타인 독립밖에는 방법이 없다.”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자세는.
“대한민국은 안보리 이사국이다. 분명한 우리 입장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 팔레스타인 유엔 정회원국 가입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거부권을 행사한 미국과 다른 견해를 밝혔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스라엘이 ‘이제 미국 하나밖에 안 남았구나. 미국의 동맹국도 다른 선택을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 거다.”
-전쟁은 언제 끝날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늘 전쟁 상태였다. 비유하자면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데 열이 확 오를 때가 있고 내려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질병은 계속되는 것이다. 다만 언제 열이 내려갈까를 예상해보면 미국 대선이 큰 변수가 될 것 같다. 누가 당선되든 이 이슈를 정리하려 할 것이다. 그때 뭔가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강조하고 싶은 점은.
“최대 피해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충돌하는 순간 팔레스타인은 잊혔다. 앞서 가자지구 전쟁이 터지자 우크라이나 문제가 싹 사라졌다. 정치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전 세계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한반도가 중동과 다르지 않은 안보 위험 지역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하지만 우리도 언제, 어떻게 비극에 휩싸일지 모른다.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연대 의식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의 고통을 알아야만 한다. 단순히 동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 문제다’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