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네이가 직접 보복 지시…모로코 등 규탄 시위 확산
네타냐후 “힘든 시기 다가와…모든 시나리오 준비됐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최고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 피살을 계기로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 확전 우려가 커졌다. 이란 최고 지도자이자 군 통수권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직접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명령하고, 이스라엘은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했다”고 경고하는 등 양측은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갔다.
1일(현지시간) 알자지라·CNN 등에 따르면 이날 이란 테헤란대학에서는 하메네이,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등 이란 고위급 인사를 비롯해 수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하니예의 장례식이 열렸다. 이란 국영 프레스TV는 이 장례가 ‘국장’이라고 전했다.
하메네이는 장례 기도를 주관했다. 그동안 최고위급 인사의 장례에서만 직접 기도를 진행한 하메네이가 외국 인사 추모 기도에 나서는 건 이례적이다. 알자지라는 “이란이 하니예를 기리기 위해 지난 5월 사망한 이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과 같은 대우를 하고 있다”는 전문가 견해를 전했다. 하니예의 관에는 팔레스타인 국기가 덮였으며, 많은 이가 팔레스타인과 이란 국기를 들고 있었다. 장례식 이후 하니예의 시신을 태운 차량이 테헤란의 아자디 광장까지 약 6㎞를 이동했으며, 추모 인파가 뒤따랐다.
칼릴 알하야 하마스 대변인은 장례식에서 “하니예 암살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시오니스트 집단(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킬 것이라 확신한다”고 연설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마즐리스) 의장은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은 이란 영토에서 야습을 저지른 것에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메네이는 이날 이스라엘에 대해 직접 보복 명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하메네이는 이날 하니예 장례식에 앞서 최고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해 이 같은 명령을 내리며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공격을 대비한 방어 계획도 세우라고 지시했다.
양측 갈등이 전면전으로 확대될지는 향후 서로 주고받을 공격 목표물과 헤즈볼라, 후티 반군, 이라크 민병대 등 주변 대리 세력의 반응 등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NYT는 “이란은 공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예멘, 시리아, 이라크 등 다른 전선에서 동시 공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관리 3명은 “이스라엘의 군사시설을 무인기(드론)와 탄도미사일로 대규모 합동 공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지만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일은 피할 것”이라고 NYT에 전했다.
일각에선 이란이 미국까지는 끌어들이지 않는 선으로 대응 수위를 조절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안드레아스 크리그 런던 킹스칼리지 교수는 “이 공격은 이란 고위 관리가 아닌 외국 손님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에 이란이 대응을 조정할 여지가 있다. 이란은 어떤 식으로든 대응하겠지만 그것이 전환점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헤즈볼라 고위급과 하마스 지도자를 살해하는 데 성공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상징적 승리’를 주장하며 휴전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다만 이는 네타냐후 총리가 휴전 협상을 정권 유지에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대국민 TV 연설에서 지난 며칠 동안 적에게 “치명적 타격”을 가한 점을 언급하면서 “힘든 시기가 다가온다. 모든 시나리오가 준비돼 있다”며 ‘강 대 강’ 기조를 이어갔다.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끝내라는 요구에 대해선 “예나 지금이나 그러한 목소리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모로코, 튀르키예, 튀니지, 요르단 등에서 이스라엘 규탄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하니예, 당신의 피가 세상을 바꿀 것” “우리는 모두 하니예이며, 하마스다” 등의 손팻말이 등장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선 항의 행진이 열렸으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애도의날’을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