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겨냥한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폭력 행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미국 정부가 이들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이들의 폭력과 영토 탈취가 ‘테러’ 수준에 이르렀다는 내부 비판까지 제기됐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이들을 적극적으로 비호하며 사실상 폭력 행위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현지시간) 미 국무부는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상대로 극단적이고 조직적인 폭력을 저지른 책임을 물어 이스라엘 정착민 단체 1곳과 개인 1명을 상대로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이번에 제재 대상에 오른 정착민 그룹은 서안지구 남쪽 헤브론 일대에서 활동하며 베두인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상대로 폭력 행위를 일삼아온 단체 ‘하쇼메르 요시’다. 이들은 공식적으로는 민간단체지만 최근 몇 년간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왔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 단체가 지난 1월 서안지구 키르벳 자누타 마을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250명이 강제 추방당한 뒤 이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무장한 채 마을에 울타리를 치고 주민들을 막았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 개인 명단에 오른 이츠하크 레비 필란트는 나블루스 남쪽에 있는 이츠하르 정착촌의 보안 요원으로, 유대인 정착민 무장 그룹을 이끌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그들의 땅에서 강제 추방하고 공격을 주도해온 인물이다. 그 역시 신분은 민간인이지만 다른 정착촌 보안 요원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국방부로부터 직접 급여를 받아 왔다.
이스라엘의 최대 지원국이자 맹방인 미국이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민과 단체를 제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의 폭력 행위가 도를 넘어서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스라엘인을 제재하는 행정 명령을 냈고, 잇따라 제재 대상을 발표해 왔다. 제재 조치는 이들의 미국 내 자산 동결과 미국 입국 비자 제한, 자금 지원 제한 등 돈줄과 물류를 차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프랑스와 호주 등 다른 서방국가들과 유럽연합(EU)도 폭력을 일삼아온 극단주의 정착민 단체 등에 대한 무더기 제재를 연이어 발표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거듭된 비판과 경고에도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을 강하게 비호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미국 정부의 새 제재 조치가 발표되자 “이스라엘 시민에 대한 제재 부과를 극도로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면서 “미국 정부와 이 문제를 논의 중”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 자국민들을 이곳에 이주시켜 왔으며,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정착촌을 확대해 왔다. 국제사회는 정착촌 건설을 ‘불법 점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의 정착촌 확대 정책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살던 땅을 빼앗기며 기존 주민들과 정착민 사이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후 정부가 나서 정착민들을 무장시키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향한 폭력 행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유엔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된 후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공격한 횟수는 1270회에 달한다. 같은 기간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640명이 이스라엘군과 정착민 공격으로 숨졌다.
서안지구 폭력 사건을 주간 단위로 기록하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통계를 보면, 지난주에만 유대인 정착민들의 공격 행위는 총 30건에 달했으며,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주민 1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같은 기간 유대인 정착민을 향한 팔레스타인인들의 공격은 1건에 그쳤고 사상자는 없었다.
도 넘은 폭력과 영토 약탈로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국내 첩보기관인 신베트의 수장이 정착민들의 폭력 행위가 이스라엘 안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를 국가가 부추긴 ‘테러 행위’라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