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저항 축’ 연쇄 공격
‘확전 덫’ 놓고 이란 반응 유도
레바논 전역에 일주일 넘게 고강도 폭격을 퍼붓고 있는 이스라엘이 예멘으로 공격 범위를 확대하며 이란을 자극하고 있다. 중동지역 반미·반이스라엘 벨트인 이른바 ‘저항의 축’을 차례로 공격하며 이들의 ‘배후’인 이란을 향해 노골적인 신호를 보낸 셈인데, 확전을 피하기 위해 ‘전략적 인내’를 고수해온 이란이 기로에 내몰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전날 이스라엘로부터 약 1700㎞ 떨어진 예멘 후티 반군의 근거지 항구도시 호데이다 등지를 공습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공격 후 성명을 내고 “우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며 “아무리 멀어도 적을 공격하는 데 상관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예멘 공습으로 최소 4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다쳤다고 후티 보건부는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중심부에까지 공습을 단행했다. 앞서 국경지대와 헤즈볼라 근거지인 베이루트 남쪽 외곽 다히예 등을 폭격해왔으나, 수도 한복판까지 기습한 것은 처음이다.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은 베이루트 콜라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표적 공습으로 간부 3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마스도 레바논 남부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하마스의 레바논 총책 파타 샤리프 아부 알아민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족과 함께 숨졌다고 밝혔다.
최근 헤즈볼라의 수장인 하산 나스랄라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 이스라엘군이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공격 범위를 넓히며 확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등 ‘저항의 축’과 일제히 전쟁을 벌이며 자신감을 드러내는 한편, 이들의 배후인 이란의 반응을 끌어내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레바논 파병 가능성에 “군 보낼 필요 없어” 선 그어
그간 이란의 ‘참전’이 이스라엘이 놓은 노골적인 ‘덫’이라고 판단해 개입을 자제해온 이란은 고심하는 분위기다. 이란은 지난 7월 하마스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수도 테헤란 한복판에서 암살되자 이스라엘에 강력한 보복을 경고했으나 현재까지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는 등 확전을 피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왔다. 이란이 개입한다면 미국의 관여 역시 불가피하다.
그러나 ‘저항의 축’ 핵심인 헤즈볼라 최고지도자까지 암살되면서 이란은 재차 기로에 놓였다. 가뜩이나 서방 제재로 인한 경제위기와 히잡 시위 등으로 분출된 사회적 불만이 심각한 상황에서 전면전에 뛰어들 경우 자칫 체제까지 위협받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대리 세력들이 두들겨 맞는 것을 속수무책 방관한다면 반이스라엘 연대의 구심력이 와해될 수 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 중동국장은 “이란이 제대로 외통수에 몰렸다”며 “이란 최고지도자 성명에서 이란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과 조심성이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미 존스홉킨스대학 국제정치 전문가인 발리 나스르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란 정부 내 분위기는 내내 이스라엘이 던진 미끼를 물지 않겠다는 것”이라면서 이란이 당장 군사 대응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이란 정부는 이날까지 파병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 등에 따르면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레바논 파병 가능성과 관련해 “어떤 요청도 없었다”며 “추가 병력이나 의용군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레바논은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을 물리칠 능력이 있다”고도 말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2주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1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6000명 이상이 다쳤다. 레바논 전체 인구의 약 5분의 1에 달하는 100만명이 피란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