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탄도미사일 공격에 대한 ‘재보복’을 예고한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이나 석유시설이 아닌 군사시설을 타격하겠다는 뜻을 미국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1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이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당국자 말을 인용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런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공격 시점은 내달 5일 실시되는 미국 대선 이전이 유력하다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이란의 탄도미사일 공격에 대한 보복 조치를 단행하되 제한적인 방식으로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동지역 확전을 막기 위해 이란의 핵시설이나 석유시설을 타격하지 말 것을 이스라엘에 압박해 왔다. 미 대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스라엘이 이란 석유시설을 공격할 경우 전 세계 에너지 가격이 급등할 수 있고, 핵 인프라 타격은 전면전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한 당국자는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미국 대선에 대한 ‘정치적 개입’으로 인식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보복 수위가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공격 수위가 미 대선 판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네타냐후 총리가 분명히 알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네타냐후 총리가 군사시설 타격을 시사하자 이스라엘이 자제력을 보인 것으로 판단하고 안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미국이 지난해 10월 개전 이후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하기로 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전날 미 국방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철통같은 방어”를 위해 이스라엘 내 사드를 배치하고 이를 운영할 미군 100명을 파병하겠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 후 사드 배치 결심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전직 이스라엘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사드를 보내고 헤즈볼라를 끝장내기 위해 필요한 무기 지원을 약속하면서 ‘이란은 차후에 상대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말을 지킬지는 불분명하다. 앞서 네타냐후 총리는 레바논 침공을 시작한 지난달에도 미국 등이 제시한 3주 휴전안에 동의했지만, 곧 입장을 뒤바꿔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제거하며 이를 무산시켰다. 유엔 총회에서 전격 휴전안을 제시했던 미국과 프랑스는 체면을 크게 구겼고, 이에 미 정부 당국자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자국 내 극우 여론을 의식해 자신들의 ‘뒤통수’를 쳤다고 분노하며 이스라엘 측에 강력 항의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란 공격에 있어서도 여전히 이스라엘 내 극우 여론이 변수다. 연정 내 극우세력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강도 높은 공격을 하라고 압박하고 있으며, 나프탈리 베넷 이스라엘 전 총리는 헤즈볼라의 힘이 빠진 지금이 이란을 칠 적기라며 이란 핵 시설 공격을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정치학자 가일 탈시르는 “이스라엘군 지도부는 확전을 원하지 않지만, 네타냐후는 그렇지 않다”면서 “네타냐후는 이란에서 서방과 핵 합의를 재개할 의향이 있는 개혁 성향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당선된 것에 조바심을 느끼고 있고,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핵 협상이 다시 시작될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지금이 이란과 서방의 관계 개선을 차단할 수 있는 적기”라고 말했다.
WP 보도가 나온 뒤 이스라엘 총리실은 성명을 내고 “우리는 미국 정부의 생각을 경청하지만, 이스라엘의 국가 안보적 필요에 근거해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