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위원회는 2007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를 선정, 지구 온난화 문제를 평화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지구 온난화 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인류의 평화로운 삶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노벨위원회는 “1980년대 온난화 문제는 ‘흥미있는 가설’로 보였지만 최근 인류 평화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며 “고어와 IPCC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 촉구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역대 노벨 평화상은 국제 분쟁을 중재하거나 인권 문제에 역할을 한 인물이나 단체에 돌아갔으나, 최근에는 빈곤 해결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나 환경 활동가에게도 수여되고 있다. 고어와 IPCC의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지구 온난화 문제는 한층 중요한 국제 문제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선 패배후 환경전도사…다큐영화 아카데미 수상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59)은 2007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영예를 안으면서 정치인에서 ‘환경 운동가’로의 변신에 완벽하게 성공했다.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공화당 조지 부시에게 패배, 정치권을 떠난 지 7년 만의 일이다. 전체 득표에서 부시보다 많은 표를 얻었으나 선거인단 수가 모자라 낙선했던 정치적 불운이, 2007년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영예로 돌아온 것이다.
앨 고어는 정계와 결별한 뒤 평소 관심 있었던 지구 온난화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환경 문제를 전 지구적 아젠다로 끌어올렸다. 그는 대선 패배 직후 전 세계를 돌며 1000회 이상의 강연을 펼쳤다. 강연 목표는 인간의 무분별한 화석 연료 소비로 인해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점을 세계인에게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정치권에서 갈고 닦은 대중 연설의 힘은 파괴력이 있었다. 지구 온난화 문제를 방기한다면 빙산이 녹아 섬나라가 물에 잠기고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그의 주장은 지속적으로 인용되면서 인구에 회자됐다.
그가 환경 운동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2006년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이 대중에게 소개되면서다. 그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 문제를 알리기 위해 지구 온난화가 가져온 재앙을 카메라에 담은 영화를 제작했다. 자신이 환경 강연을 하는 영상도 포함시켰다.
영화는 2007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으면서 작품성 면에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고, 상업적으로도 성과를 거뒀다. 앞서 쓴 같은 제목의 책도 불티나게 팔려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는 지난 7월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환경 콘서트 ‘라이브 어스’를 주최하면서 또한번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팝 가수 마돈나, 본조비 등이 출연한 이 콘서트는 세계 7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렸으며 전세계에 중계돼 20억명 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기획력은 어떤 과학자보다 효과적으로 온난화 문제를 지구촌에 알린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고어가 환경 운동에 투신한 것은 대선 패배 이후지만 환경에 대한 관심은 일찍부터 가져왔다. 고어는 하버드 대학시절 이산화탄소 연구자인 은사 레벨 교수를 통해 처음 환경에 관심을 가졌다. 꾸준한 관심을 바탕으로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 지식을 갖춘 그는 1992~2000년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97년 160여개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합의하는 교토 의정서를 채택하는 데도 중추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어는 이번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환경 운동가의 입지를 굳히게 됐지만, 다시 정계로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환경에 대한 그의 성과가 부각되면서 지지 세력이 결집하는 데다, 고어가 대선 출마에 대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겠다”는 모호한 발언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고어 지지자들은 최근 ‘고어 대선 출마’라는 국민서명 운동을 펼쳐 12만7000명의 서명을 받았다. 최근 고어가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할 경우 지지율이 힐러리 클린턴을 앞지를 수 있다는 여론조사도 발표됐다.
그러나 고어가 호화저택에 살며 에너지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등 표리부동하다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어 그의 대선 출마가 오히려 명예에 흠집을 내는 독(毒)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기·해양전문가 1500여명 뭉친 ‘최대 온난화 기구’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는 유엔 산하의 유엔환경계획(UNEP)과 세계기상기구(WMO)가 기후변화를 분석하기 위해 1988년 공동으로 설립한 국제 연구기구다. IPCC는 세계 각국의 정책 결정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기후 변화에 관련된 과학적, 기술적 사실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제공하고 있다. 90년 8월 1차 보고서를 발표한 이래 5~6년마다 한차례씩 총 4차례 보고서(2007년 포함)를 냈다. 과학자 1500여명이 참여해 지구의 기후 변화를 95% 이상의 확률로 예측한다.
지구 온난화 문제가 지구촌 의제로 부상한 올해에는 그 어느때보다 IPCC의 보고서가 주목을 받았다. IPCC는 올해 세차례 환경보고서를 발간했으며, 오는 11월 1년간 밝혀진 사실을 종합한 ‘종합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IPCC는 지난 2월 1차 보고서를 통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을 ‘인간의 책임’이라고 못박으며 무차별하게 환경을 파괴해 온 인류에게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했다. 4월 2차 보고서에서는 지구 온난화가 지속될 경우 2080년대 지구의 온도가 3.5도 이상 올라가면서 주요 생물 대부분이 멸종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5월 3차 보고서에서는 온난화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시했다. 그러나 3차 보고서 채택을 앞두고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이 온실가스 배출 규제에 대한 구체적 방안의 수위를 낮춰줄 것을 요구하는 등 주요국들의 로비가 끊이지 않아 보고서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김정선기자 kjs04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