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난민…쿠르디의 주검에 깜짝…‘관용’과 ‘증오’ 민낯 보인 유럽

김유진 기자

쿠르디처럼 올해 185명 숨져

구호 등 시민 연대의 힘 빛나

일부 국가는 국경 폐쇄 맞서

지난 9월2일 빨간색 상의를 입은 어린 소년이 터키 보드룸의 해변에 얼굴을 파묻은 채 숨진 사진 한 장이 공개됐다. 소년의 이름은 아일란 쿠르디. 내전으로 찢긴 시리아의 고향 코바니를 떠나, 가족과 함께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유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보트가 전복되면서 쿠르디와 엄마, 다섯 살 형의 여정도 끝이 났다.

쿠르디는 죽었지만 그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사진은 유럽행 난민들의 절박한 실상을 호소했다. 그동안 난민들을 외면해 온 세계인의 양심도 일깨웠다. 올 한 해에만 약 100만명이 지중해를 건너는 등 지난해보다 3배나 많은 난민이 유럽 땅을 밟았다. 국제이주기구(IOM)는 지난 18일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발표한 자료에서 올해 95만여명의 난민이 유럽에 도착했고, 3695명이 지중해상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유니세프는 올해 쿠르디처럼 바다를 건너다 숨진 어린이들이 185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터키 보드룸 해안에서 지난 9월2일 시리아 출신의 세 살 난민인 아일란 쿠르디가 엎드린 채 숨져 있는 것을 현지 군인이 발견하고 있다.  보드룸 | AP연합뉴스

터키 보드룸 해안에서 지난 9월2일 시리아 출신의 세 살 난민인 아일란 쿠르디가 엎드린 채 숨져 있는 것을 현지 군인이 발견하고 있다. 보드룸 | AP연합뉴스

난민 행렬이 이어지면서 인도적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8월 “독일에 오는 시리아 난민을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불과 몇 주 전에 “원한다고 모두 독일에 있을 수는 없다”는 답변으로 팔레스타인 난민 소녀를 울린 냉정한 메르켈이 ‘마더 메르켈’로 추앙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가톨릭 교구가 난민 가족을 받아들일 것을 당부했다. 일반 시민들의 연대도 빛났다. 난민들에게 기꺼이 방 한 칸을 내주거나, 기차를 타고 도착하는 난민들에게 구호물자를 직접 전달하는 손길이 이어졌다.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의 난민들도 힘겨운 한 해를 보냈다. 5년째 계속된 내전으로 시리아를 떠난 난민 중 200만명이 터키에, 110만명이 레바논에 머물고 있다. 이들 지역에선 정부는 물론 유엔 등 국제기구들도 예산 부족 탓에 체계적인 난민 지원이 어려운 실정이다. 시리아 내에서 집을 잃고 떠도는 내부 실향민도 760만명에 달한다.

아시아에서는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자와 방글라데시 난민의 위기가 도마에 올랐다. 올해 상반기에만 2만여명이 목숨을 걸고 안다만해를 건넜다. 특히 상당수는 인신매매 조직에 의해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태국 등지에 노예로 팔려가거나, 난민수용소에서 착취와 죽음을 당했다. 내전과 쿠데타, 군사독재로 정정 불안이 이어져 온 아프가니스탄, 예멘, 에리트레아 등에서도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올해 난민과 내부 실향민 등 6000만명이 강제로 이주한 것으로 추산했다.

2015년 난민 문제는 인도주의 이슈를 넘어 뜨거운 정치쟁점으로 부상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메르켈의 난민 공동분담 제안을 놓고 격렬하게 대립했다. 헝가리 등 난민 이동 경로에 위치한 일부 동유럽 국가는 장벽 건설로 국경을 잠궜다. 스웨덴이나 독일, 프랑스 등 관용이 존중되는 사회에서도 난민을 겨냥한 증오 범죄나 극우 집회가 벌어졌다. 지난 11월 파리 동시다발 테러 이후 서구의 보수 정치권에서는 테러리스트들이 난민에 섞여 들어올 수 있다는 이유로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캐나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지난 10일 시리아 난민들을 태운 첫 비행기가 도착하는 날 직접 공항에 나가 난민들을 환영하는 낯설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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