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만든 영화 등장···AI 창조성 어디까지 진화하나

주영재 기자

창조는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일까?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끝난 뒤 사람들은 창의성과 판단력, 직관과 같은 능력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이런 시각도 종내는 인간들의 자위에 지나지 않을 지 모른다. 소설을 쓰고,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인간의 창조성을 ‘모방’하는 단계지만 언젠가는 기계가 스스로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지 모르는 일이다.

지난주에는 처음으로 인공지능이 창작한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감독 오스카 샤프와 인공지능 연구자 로스 굿윈은 공동작업으로 시나리오를 만드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벤자민’(Benjamin)을 완성시켰다. 이들은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의 정보기술 전문매체 ‘아르스 테크니카’(▶영상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에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첫 영화를 일반에 공개했다.

‘태양샘(Sunspring)’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9분 정도의 길이의 단편 SF 영화다. 영화 ‘실리콘밸리’로 유명세를 얻은 배우 토마스 미들디치를 비롯해 엘리자베스 그레이, 험프리 커 등 3명이 출연했다. 영화 제목은 벤자민이 정했다.

인공지능 ‘벤자민’이 만든 영화의 한 장면. 출처:아르스 테크니카

인공지능 ‘벤자민’이 만든 영화의 한 장면. 출처:아르스 테크니카

■스스로에게 이름 붙인 인공지능

르 몽드의 10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연구진은 벤자민이 시나리오를 쓸 수 있도록 수십 편의 영화 및 SF 시리즈물의 시나리오를 입력시켰다. 이들 작품 목록에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X파일’ ‘어비스’ ‘스타트렉’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이 포함됐다.

샤프와 굿윈은 벤자민을 이용해 ‘사이파이 런던’(Sci-Fi London) 콘테스트에 참여했다. 당시 벤자민의 이름은 젯슨(Jetson)이었다. ‘사이파이 런던’은 매년 런던에서 열리는 공상과학 영화제로 영화제 안에는 ‘48시간 도전’(48 HOUR CHALLENGE)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말 그대로 48시간 이내에 영화를 제작하는 대회다. 무작위로 정해진 소품, 한 두 줄의 대사가 영화에 등장하는 것을 조건으로 완성시켜야 한다.

지난 4월6일~8일 열린 올해 ‘48시간 도전’에는 300여팀이 참가해 이중 180개 팀이 기한 내에 영화를 완성해 출품했다. ‘태양샘’은 여기서 심사위원단이 고른 상위작 10개 명단에 포함됐다. 최우수 과학소설에 수여하는 휴고상과 아서클라크상 등을 수상한 유명 공상과학 소설가인 팻 카디건은 ‘태양샘’을 이 명단에 올리면서 “그들이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이 작품에 최고점을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종 결과에서 ‘태양샘’은 수상 순위에는 들지 못했다. 사비는 “내겐 순전히 공상과학으로 여져겼던 일이 과학적 사실이 됐다”며 “젯슨 팀이 한 일은 우리가 최고로 생각하는 적절한 실험적 영화 제작이었다”고 말했다. 축제 주최측은 이 영화에 담긴 실험 정신을 높이 사면서도 다음 대회에서는 참가팀들의 인공지능 사용 정도를 제한하는 새로운 규칙을 도입하기로 했다.

■인공지능이 만든 영화 어떤 평가 받았나?

르 몽드는 이 영화가 “보통 이상으로 뛰어나지만 시나리오에서 유기적 연결성이 뚜렷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벤자민이 만들어낸 대사는 종종 우스꽝스럽고 기괴했다. 일례로 “대량 실업이 지배하는 미래에 청년들은 매혈을 강요받는다” “그 소년을 보고 침묵해야 한다. 그의 대화 상대방에게 답해야 한다. 나는 100살이 된 것으로 간주된다” 등을 들 수 있다.

“그는 별들 속에 서 있다. 그리고 땅 위에 앉는다”처럼 대사만이 아니라 무대 지시도 제작진을 당황케했다. 다행히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 음악이 이를 어느 정도 개연성있게 만들어주면서 영화에 마치 실험영화와 같은 느낌을 줬다.

또 다른 예로 한 배우가 영화 안에서 “돈을 확인해보자”라고 말하자 또 다른 배우가 갑자기 그의 눈동자를 입 안에서 꺼낸다. 이 동작은 벤자민이 ‘그래야 한다’고 지시한 내용이다. 이 영화가 공상과학물이 아니라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들이다.

■‘벤자민’, 무엇인가 누구인가

뉴욕대의 영화학교에 다니던 샤프는 뉴욕대에서 자연어 처리와 신경망 연구를 하고 있던 굿윈과 어울릴 수 있었다. 굿윈은 수년간 기업 고객들을 대상으로 기계 조력을 받는 메일 작성 프로그램을 제공해왔다.

굿윈은 ‘마르코프 연쇄’를 이용해 시를 쓰기도 했다. 마르코프 연쇄는 시스템의 현재 상태만 주어지면 미래 상태의 조건부 확률 분포가 과거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결정되는 성질을 뜻한다. 마르코프 연쇄를 인공지능의 시나리오 작업에 응용하면 독창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두 사람은 이런 방향의 작업을 함꼐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굿윈이 입력한 시나리오들은 대개 1980~1990년대에 나온 것들로 온라인에서 텍스트 파일을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벤자민은 이 시나리오들을 단어 단위로 분해한 뒤 어떤 단어나 절들이 서로 함께 어울려 등장하는지를 분석한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서 벤자민은 시나리오의 구조를 모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벤자민이 만들어낸 시나리오에는 대사는 물론 배우에 전달할 무대 지시도 포함됐다. 영화에 포함될 노래의 가사도 만들었다. 벤자민이 할 수 없는 것은 배우의 이름을 생각해는 것이었다. 그래서 ‘태양샘’에 등장하는 배우의 이름은 H, H2, C이다.

샤프에게 벤자민 실험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공상 과학물의 스토리텔링의 유형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샤프는 벤자민의 작품을 인공지능이 들여다 본 모든 작품들의 ‘평균 수준’으로 부르길 좋아한다. 일부 유형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굿윈은 태양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사인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확신하지 않아”를 예로 들었다. 샤프는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묻고, 그들 앞에 무엇이 있는지 묻는다”며 “공상 과학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환경을 이해하려 하는 것과 패턴이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정한 작가라면 자신만의 목소리로 자신만의 스토리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아직 벤자민은 작가로 부르기는 어려워 보인다. 벤자민은 독창적으로 보이고 때론 기괴한 이야기들을 썼지만 이는 여전히 인간이 쓴 작품들 안에서 발견한 패턴들을 기반으로 했다. 벤자민은 오직 다른 사람들이 쓴 것에 기반해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이다. 그 자신의 목소리가 등장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단지 사람들이 말한 것들의 순수한 반영일 뿐이다.

그럼에도 공상과학 작품들에 담겨있는 일정한 패턴을 잡아냈다는 점에서 벤자민을 단순한 도구로만 보기는 어렵다. 아르스 테크니카의 기자는 샤프와 굿윈을 인터뷰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셋 모두가 벤자민을 ‘그’ 또는 ‘그것’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쓰는 도구인 것인지, 아니면 영화의 공동 참여자로 볼 것인지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뜻이다.

■구글의 ‘마젠타’

회화나 음악, 문학 등 예술 작품을 모방하려는 인공지능 연구가 곳곳에서 열기를 띠고 있다. 지난 6월1일 구글은 인공지능의 창조성을 연구하는 새 프로젝트 ‘마젠타’를 공개했다. 마젠타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구글은 우선 음악을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을 만든 뒤 이를 발전시켜 영상과 다른 시각 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 적용할 계획이다.

마젠타의 첫 번째 결과물은 약 80초 분량의 단순한 멜로디다. 이 곡은 첫 4개 음표가 주어진 상태에서 기계학습 알고리즘으로 생성됐다. 다만 공개된 음원 중 피아노 파트 외에 드럼과 오케스트라 반주는 사람이 덧붙였다.

기계학습을 위해 막대한 양의 예시 작품들이 마젠타에 입력됐고 마젠타는 이를 이용해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마젠타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영상을 피카소의 화풍대로 변환시켰고, 반 고흐의 그림처럼 ‘블레이드 러너’와 ‘스타워즈’의 영상을 바꿨다.

구글 두뇌 팀은 블로그에서 마젠타의 목표가 “머신 러닝을 통해 설득력 있는 예술과 음악을 창조할 수 있는지” 알아 보는 것이라고 밝히고 “만약 가능하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또 만약 불가능하다면 왜 안 되는지” 연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구글이 공개한 오픈 소스 머신 러닝 플랫폼 ‘텐서플로’를 이용해 만든 모델과 도구를 최근 오픈소스의 버전 관리 사이트인 깃허브(GitHub)에 공개했다.

작곡을 하는 컴퓨터 알고리즘은 1950년대부터 존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7년 레자렌 힐러와 레너드 아이잭슨이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에 있는 일리악(ILLIAC) I 컴퓨터를 이용해 만든 ‘현악사중주를 위한 일리악 모음곡’이 이런 방식으로 작곡된 첫 음악작품으로 꼽힌다.

■예술가로 진화하는 인공지능

구글이 마젠타로 인공지능의 창조성을 시험하기에 앞서 사실 여러 선행 연구들이 있었다. 코넬대학교에서 크레에이티브 머신 연구를 이끌고 있는 호드 립슨과 마이클 슈미트는 2009년 유레카라고 명명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자연의 기본 법칙을 발견할 능력이 있는 시스템으로 물리학이나 운동의 법칙을 시스템의 프로그램에 입력하거나 관련 정보를 넣지 않았는데도 이 프로그램은 몇 시간 만에 진자 운동을 관찰한 후 뉴턴의 운동 제2법칙을 비롯한 진자의 운동 관련 물리 법칙 몇 가지를 찾아냈다.

유레카는 생명의 진화에서 힌트를 얻은 유전자 프로그래밍을 활용한다. 유전자 프로그래밍은 무작위적으로 수학 방정식을 만든 뒤 이 방정식이 데이터와 얼마나 일치하는 지 시험해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방정식은 폐기되고 가능성이 보이는 방정식을 새로운 방법으로 결합해 결국 정확한 수학적 모델로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음악에 특화된 알고리즘인 ‘야머스’는 수백만개의 곡을 작곡했는데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몇 분에 불과하다. 2012년 7월에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심연 속으로’라는 곡을 연주했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가 순전히 기계가 만든 곡을 연주한 첫 번째 사례다. 런던대학교의 크리에이티브 컴퓨팅 교수 사이먼 콜턴은 ‘그림 그리는 바보’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벤자민처럼 글을 쓰는 영역에서는 일본의 인공지능 연구자들도 두각을 나타냈다. 올해 초 마쓰바라 진(松原仁) 공립하코다테미래대 교수 등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쓴 4편의 단편 소설을 SF 작가 호시 신이치(星新一)의 이름을 붙인 ‘호시 신이치’ 문학상에 응모해 1차 심사를 통과했다. 연구진은 주인공 남·녀 설정 등 소설의 대략적인 구성을 담당하고, 인공지능으로 하여금 단어와 형용사 등을 조합해 문장을 만들도록 하는 방법으로 소설을 쓰는 작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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