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남서부 국가 나미비아가 20세기 초 식민지 시절 학살 사건과 관련한 독일의 배상 제안을 거부했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는 12일(현지시간) 전날 하게 게인고브 나미비아 대통령이 “나미비아 정부는 독일 정부가 제시한 배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일간 더나미비안은 독일이 1000만유로(약 139억원)의 배상금을 제시해 협상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독일 정부가 배상보다는 경제원조를 원하고 있으며 ‘배상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정부는 1990년 독립한 나미비아에 상당한 개발원조를 해왔다는 이유로 나미비아에 대한 사과와 직접 배상을 거부해왔다. ‘학살’이나 ‘배상’ 같은 표현도 꺼린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범죄에 대한 독일의 태도와는 대조적인 대목이다. 나미비아 정부는 1000만유로는 자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1884년 나미비아(당시 남서아프리카)를 점령한 독일은 1904년 헤레로 부족과 나마 부족이 식민지배에 반대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잔혹하게 진압했다. 독일은 부족민들을 사막에 몰아넣고 음식물 공급을 끊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집단수용소에 감금돼 질병과 굶주림, 학대 등으로 사망했다. 그 결과 최대 8만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은 1985년 이 사건을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로 규정했다.
독일은 나미비아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독립한 1990년부터 2004년까지 5억유로(약 7000억원) 규모의 경제원조를 했다. 2004년 해외 원조를 담당하는 개발장관이 나미비아를 방문해 사과했고, 지난해에는 다니엘 귄터 연방상원의장이 강제수용소 사망자 위령비 앞에서 묵념을 한 적은 있으나 독일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나미비아와 독일은 2015년부터 학살 보상 문제를 놓고 8차례 협상을 진행했으나 독일의 소극적 태도 탓에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015년까지도 학살 사실을 부인했다. 지난해에는 귄터 연방상원의장과 게르트 뮐러 개발장관이 잇따라 독일을 방문하면서 독일이 보상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게인고브 대통령은 지난 6월4일 “독일이 1904~1908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학살’이라고 부르는 데 동의하고 정부 최고위층에서 공식 사과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나미비아 언론도 “독일이 마침내 학살에 대해 사과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이와 관련해 “협상이 상호 신뢰 속에서 건설적인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다”고만 밝혔을 뿐 사과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