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과 기후변화 등 업고 후쿠시마 10년만에 고개드는 원전론

이효상 기자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세계 에너지 정책의 전환점이 됐다. 언제까지 후유증이 이어질지 모를 참사에 일부 국가들은 탈원전을, 다른 국가들은 원전 안전 규제 강화를 선택했다. 2000년대부터 시작된 ‘원전 르네상스(부흥)’로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했던 미국 원전 산업도 다시 주춤했다. 미국 최대 원전 운영사인 엑셀론의 존 로우 회장은 ‘원전 르네상스’는 “죽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일본 후쿠시마현 후타바정의 소방서에 소방관들의 작업복이 걸려 있다. 이 지역은 원전 사고로 발생한 피난민의 귀환이 어려운 지역으로 설정됐다가 지난해 일부가 해제됐다. 후타바|AP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일본 후쿠시마현 후타바정의 소방서에 소방관들의 작업복이 걸려 있다. 이 지역은 원전 사고로 발생한 피난민의 귀환이 어려운 지역으로 설정됐다가 지난해 일부가 해제됐다. 후타바|AP연합뉴스

그 원전 산업이 후쿠시마 사고 10년만에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무대를 마련해 준 것은 기후변화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화력발전소를 모두 대체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원전에 길을 열어준 것이다. 후쿠시마 참사의 기억이 10년의 세월에 풍화된 것 역시 일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원전의 경제성이 재생에너지보다 떨어지고 핵폐기물 처리 방안은 마땅치 않으며, 안전성 우려 역시 여전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 10년 세계의 원자력 발전은 제자리 걸음을 걷거나 퇴보했다. 지난 4일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세계원자력산업현황 보고서를 보면, 2020년 7월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408기의 원전이 가동중이다. 이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2011년의 437기에서 소폭 줄어든 수치다.

후쿠시마 참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은 쓰나미에 의해 비상발전기 전원까지 차단되면서 총 6기 중 1~3호기에서 멜트다운(노심용융)이 발생하고 1·3·4호기에서는 수소폭발이 발생했다. 당장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고, 용융된 핵연료 파편을 식히기 위해 냉각수를 사용하면서 오염수가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원전 정책 재검토에 착수했다. 2010년만 해도 17기 원전의 수명 연장을 결정했던 독일은 참사 4개월 후 2022년까지 원전 모두를 폐쇄하기로 했다. 2011년 6월 이탈리아도 국민투표를 통해 원자력 발전 계획을 폐기하기로 확정했다. 세계에서 원전을 통한 전력 생산량이 가장 많은 미국은 후쿠시마 이후 104개 원전에 대한 포괄적인 안전검토에 들어갔다. 안전규제는 강화됐고 원전 회사가 수명 연장 허가를 받기 위한 시간도 길어졌다. 전체 전력 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75%로, 절대적인 의존도에 정책 수정이 어려웠던 프랑스도 2035년까지 원전 비중을 50%까지 낮추기로 했다. 당사자인 일본은 2011년 54기의 원전을 가동했지만 현재는 9기만 가동하고 있다. 안전 규제 강화만 해도 버거운데 저렴한 셰일가스, 재생에너지까지 출현하면서 웨스팅하우스 등 주요 원전 건설 회사가 파산하기도 했다.

2011년 7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20km 떨어진 나미에정의 해안가에서 촬영된 사진. 쓰나미에 육지로 올라온 배가 도로를 막고 있다. 나미에|AP연합뉴스

2011년 7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20km 떨어진 나미에정의 해안가에서 촬영된 사진. 쓰나미에 육지로 올라온 배가 도로를 막고 있다. 나미에|AP연합뉴스

그러나 사고 10년만에 원전은 기후변화를 등에 업고 기지개를 펴고 있다. 가지야마 히로시(梶山弘志)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2050년 탄소중립 달성 국가 목표를 언급하며 “개인적으로 원자력이 필수불가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전에 대해 침묵해왔던 일본 정부 관계자로서는 드물게 공개적인 원전 재가동 입장을 피력하며, 기후변화를 명분으로 든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소유주로 사고의 원흉인 도쿄전력의 고바야카와 도모아키(小早川智明) 사장도 지난 4일 블룸버그에 탄소중립을 위한 ‘원자력 활용론’을 제기했다. 바람이 불 때, 햇볕이 쬘 때만 생산 가능한 풍력·태양광 에너지의 불안정성을 원전이 보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일본은 전체 전력생산에서 지금은 한 자릿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원전 비중을 20%까지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7일 교도통신 여론조사 결과 시민의 76%가 후쿠시마 사고의 재발 우려를 들며 탈원전 정책을 지지했지만 국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일본뿐 아니라 이미 많은 국가들이 원전 건설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원전이 석탄화력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중국에서 건설 중인 16기를 포함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50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다. 서구 선진국과 달리 경제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국가들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원전을 선호해왔다. 터키와 방글라데시는 국가의 첫 원전을 건설 중이고, 폴란드와 이집트는 원전 건설을 검토중이다.

원전을 혁신해 안전성을 제고하겠다는 구상은 이런 흐름에 힘을 싣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 빌 게이츠는 원전 회사인 테라파워를 설립해 원자로 냉각에 물 대신 액화 나트륨을 사용하는 소형 원자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CNBC에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세대의 원전이 있다. 그것은 안전문제에 대해서도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도 소형 원자로 등 원자력에 대한 연구비를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혁신이 이뤄지기 이전에는 기존 원전이 여전히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 원자력 규제위원회 의장을 지낸 그레고리 자코는 CNBC에 “(신형 원전이) 개발만 된다면 모든 종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빌 게이츠의 구상을 “에너지 유니콘(상상의 동물)”이라고 칭했다.

막대한 건설비용, 안전비용, 사후처리비용이 투입되는 원전이 그간 비용 절감을 거듭한 재생에너지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8월 포르투갈에서는 한 태양광 전력 판매업자가 1kwh당 1센트를 조금 넘는 돈에 전력을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계산에 따르면 원전으로 1kWh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최소 2.8센트, 최대 10센트의 비용이 들어간다. 원전 컨설턴트인 마이크 슈나이더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전세계의 원자력 발전 대부분이 오늘날 재생에너지와 경쟁관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크 제이콥슨 미국 스탠포드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2030년까지 기후와 오염문제의 80%를, 이상적으로는 2035년까지 100%를 해결해야 하는데, 계획부터 건설·운영까지 평균 15년이 걸리는 새로운 원자로는 기후문제 해결 측면에서 전혀 쓸모가 없다”며 “지금까지 최고의 솔루션은 기존의 청정 재생 에너지 및 저장 기술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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