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명 살해 혐의 받은 대통령이 돌아온다…정국 불안정 드리우는 코트디부아르읽음

윤기은 기자
지난 2월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공판에 참석한 로랑 그바그보 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이 손을 흔들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헤이그|AP연합뉴스

지난 2월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공판에 참석한 로랑 그바그보 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이 손을 흔들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헤이그|AP연합뉴스

수천명이 사망한 전쟁 범죄 피고인,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재판받은 최초의 전 국가 원수,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마음대로 대통령직에 취임한 독재자. 로랑 그바그보(76) 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에게 붙는 수식어다.

알자지라는 ICC로부터 전쟁 범죄 혐의 무죄 판결을 받은 그바그보 전 대통령이 약 10년 만인 17일(현지시간)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코트디부아르의 정국이 다시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바그보 전 대통령은 2010년 코트디부아르 내전을 치르는 동안 군대를 동원해 민간인을 상대로 살인, 고문, 강간 등을 저지른 전쟁 범죄를 주도한 혐의를 받았다. 이듬해 그는 네덜란드 헤이그 ICC 본부로 송환돼 구금된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고 ‘증거 불충분’으로 지난 3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알자지라는 내전 당시 정부군에 의해 3000여명의 민간인들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내전은 그해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발발했다. 2000년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한 그바그보 전 대통령은 자신이 졌음에도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제멋대로 연임했다. 당시 대선 당선자이자 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알라산 와타라도 따로 취임을 해버렸고, 당시 한 나라에 두명의 대통령이 존재했다. 코트디부아르는 그바그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기독교계와 와타라 대통령의 이슬람 세력으로 나뉘었고, 5개월간 내전이 지속됐다. 와타라 진영은 프랑스군과 손을 잡고 그바그보를 체포하며 최종적으로 정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알라산 와타라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이 지난 4월7일(현지시간)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대통령궁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 참석해 있다. 아비장|로이터연합뉴스

알라산 와타라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이 지난 4월7일(현지시간)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대통령궁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 참석해 있다. 아비장|로이터연합뉴스

그바그보 전 대통령의 잔혹한 혐의에도 코트티부아르에서는 그의 정계 복귀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많다. 와타라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와타라 대통령은 2016년 헌법을 개정해 연임 제한을 풀고, 2020년 3선에 당선됐는데, 일부 시민들은 그의 당선에 반대하는 거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부패와 족벌 인사 등용 의혹도 받고 있다.

북부 이슬람계와 남부 기독교계가 서로에 대한 앙금이 남아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도 두 전현직 대통령의 정치 대립을 가중시킬 수 있다. 양 진영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임의로 한 나라에 속하게 됐고, 1960년 독립한 이후에도 정권을 잡고 코코아 수출권을 독점하기 위해 무력 충돌을 벌여왔다. 기독교 세력은 와타라 대통령이 재임 기간 이슬람 세력에만 혜택을 줘 왔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코트티부아르의 분위기는 그가 귀국하기 전인데도 심상치 않다. 로이터통신은 그바그보 대통령 지지자들이 수도 아비장에서 그의 사진이 담긴 스카프, 의류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지난 15일 전했다. 그바그보는 자국에서 지역 은행에서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20년 징역형을 받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됐지만, 자신의 정치 진영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와타라 대통령은 우선 그바그보 대통령에 대한 회유책을 펼치고 있다. 그와 “화해하고 싶다”고 밝힌 와타라 대통령은 ICC 명령으로 벨기에 브뤼셀에 머물고 있던 그바그보 전 대통령의 귀국을 지난 4월 허용했다. 그바그보 전 대통령에게 연금과 경호 등을 지원하며 전직 대통령 대우를 유지하겠다고도 밝혔다. 프랑스24는 와타라 정부가 징역형을 받은 그를 사면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그바그보 전 대통령의 복귀가 코트디부아르 정국에 긴장감을 높인다고 말한다. 아비장전략연구소 정치분석가 실뱅 응게산은 “그바그보는 여전히 야당의 거물로 남아있다”며 “아이보리인민전선(FPI)과 베테족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그바그보 전 대통령이 정계에 복귀하면 와타라 대통령과의 정치적 대립이 더욱 심화할 우려가 있다. 와타라 대통령도 헌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등 만만치 않게 권력에 욕심을 내고 있다. 프랑스24는 그바그보의 복귀로 다시 내전이 일어나면 피난 가야 하는 상황을 대비해 미리 쌀 봉지를 꾸려둔 현지 시민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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