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은 미얀마를 구할 수 있을까?

이효상 기자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정상들이 모여 폭력 종식 등 5개항에 합의한 지 2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합의는 이행되지 않고 있다. 미얀마 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중재자로 꼽혔던 아세안의 정치력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의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2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니콜라이 파트루쉐프 러시아 연방안보회의 서기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의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2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니콜라이 파트루쉐프 러시아 연방안보회의 서기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월1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며 시작된 미얀마의 혼란은 시민 저항이 5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세안의 폭력 종식 합의에도 불구하고 군부의 총격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21일 현지매체 이라와디는 지난 주말 사이 최소 13명의 시민이 군부의 총격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에 따르면 21일 기준 시민 사망자 수는 873명에 달한다. 이중 125명은 아세안이 폭력 종식 등 합의에 도달한 지난 4월24일 이후 사망했다.

아세안 정상들은 지난 4월 자카르타에서 미얀마 사태를 논의할 특별정상회의를 열고 폭력 종식, 특사 파견, 평화적 해법을 위한 대화, 인도적 지원 등에 합의했다. 당시만해도 전향적인 합의라는 평가가 나왔다. 아세안이 오랫동안 고수해온 회원국 내정에 대한 불간섭 원칙을 깨고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기 때문이다.

아세안이 2007년 채택한 헌장은 ‘내정 불간섭’과 ‘법치와 민주주의, 입헌정부 원칙의 준수’를 병기하고 있지만, 아세안은 양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할 때가 오면 늘 ‘내정 불간섭’을 우선했다. 2014년 태국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도 아세안은 ‘내정 불간섭’ 원칙에 따라 이를 묵인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미얀마 쿠데타에 대해서는 달랐다. 국제사회의 높은 관심이 변수가 됐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의 국가들은 독자적인 제재가 미얀마 군부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하자 아세안의 중재를 요청하고 나섰다. 중국 역시 사태 봉합을 위해 아세안의 개입을 요구했다. 여기에 역내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의 최대 투자국인 싱가포르가 주축이 돼 미얀마 사태를 다룰 정상회담을 적극 요청했다.

하지만 합의 이행의 전제 조건으로 꼽힌 아세안의 특사는 아직도 임명되지 않았다. 특히 올해 아세안 의장국을 맡은 브루나이의 미온적인 태도가 특사 임명 절차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달 초 브루나이 출신의 림 족 호이 아세안 사무총장과 에리완 유소프 브루나이 외교장관은 미얀마를 방문해 아세안의 각 국이 제안한 특사 후보자들의 명단을 미얀마 군부에 제출했다. 아세안 차원에서 특사를 임명하지 않고 군부에 선택권을 준 것이다. 특히 브루나이가 정의한 특사의 개념을 두고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브루나이는 특사가 관련 당사자들 간의 중재 역할만 수행하도록 직무의 범위를 한정했다. 또 특사가 미얀마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지 않도록 했고, 특사의 소속 국가가 활동 비용을 지급토록 했다. 이 경우 미얀마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조사도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21일 “브루나이의 지도자들은 미얀마 사태로 인해 자신들의 의장국으로서의 의제가 밀려난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듯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세안 10개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8일 유엔의 미얀마 무기금수 촉구 결의안 표결 과정에서 아세안 국가들은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5개국은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반면, 태국과 캄보디아, 라오스, 브루나이는 기권했다.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태국의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최고사령관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의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1일 방콕포스트에 “미얀마와 2400㎞의 국경은 물론 다차원적인 관계를 공유하는 국가로서, 태국은 다른 여러 국가처럼 미얀마와 거리를 둘 수 없다”며 “국제사회는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도움을 줘야지, 불안을 가중해 폭력으로 이어지게 할 적대감을 심화시켜서는 안된다”고 했다.

역내에 팽배한 권위주의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상당수 국가가 최근까지 독재를 겪거나, 현재도 독재자의 통치 아래 있다. 베트남과 라오스에서는 일당 독재가 계속되고 있고, 캄보디아에서는 훈 센 총리가 37년째 권좌를 지키고 있다. 브루나이는 아직도 절대왕정 국가로 남아 있고, 태국은 1932년 이후 19번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태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얀마 무기금수 촉구 결의안에 기권한 이유를 설명하며 “오늘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내일 태국에 직접적으로 안보면에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포린폴리시는 “아세안 국가들이 중국과 미국, 러시아, 인도, 일본 등과 같은 외부의 국가들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를 악화시킨다”며 “만약 아세안이 앞으로 몇 주 동안 합의를 이행시킬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국제사회는 미얀마인들을 도울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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