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곳곳에서 부활하는 성소수자 혐오...'공공의 적' 만드는 우파 정부

윤기은 기자
23일(현지시간)무지개 조명이 켜진 독일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 앞에 사람들이 서 있다.  베를린|AFP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무지개 조명이 켜진 독일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 앞에 사람들이 서 있다. 베를린|AFP연합뉴스

유럽 곳곳에서 성소수자 혐오가 부활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나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교황청은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정치인들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유럽축구연맹(UEFA)는 22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축구 경기장에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무지개색 조명을 띄우자는 뮌헨시의 요청을 거절했다. 뮌헨시가 조명을 켜자고 요청한 날짜인 23일은 독일-헝가리전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UEFA는 “연맹은 정치·종교적으로 중립적인 기관”이라고 무지개 조명을 거절한 이유를 설명했다. 뮌헨시의 요청은 성소수자 권리를 침해하는 법을 통과시킨 헝가리 의회를 겨냥한 것으로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앞서 헝가리 의회는 지난 15일 성소수자 관련 콘텐츠를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에게 보여주는 것을 금지하는 소아성애방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인권단체들은 개정된 법안이 사람을 차별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며 법안을 주도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여당 피데스당을 비난했다.

헝가리 성소수자 단체 헤이터 소사이어티는 “성소수자 권리를 정치적으로 받아들여 실망”이라며 “성소수자 관련 주제를 다루는 제품이나 프로그램을 금지하는 것은 우리를 지우려 시도하는 것이다”고 독일 도이체벨레에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대변인실을 통해 “무지개는 오랫동안 소외된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의 권리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황청이 이탈리아 정부에 보낸 외교 서한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탈리아 언론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지난 17일 교황청 외무장관 폴 리차드 갤러거 대주교가 주교황청 이탈리아 대사관에 “성소수자 차별금지 법안이 신앙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내용의 구술서(외교 공한)를 보내 이탈리아 정부를 압박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민주당 소속 동성애자 국회의원 알레산드로 잔이 발의해 ‘잔 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안은 성소수자나 여성을 대상으로 혐오 범죄를 일으키거나 혐오 발언을 한 사람에게 최대 4년의 징역형을 내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법안은 하원을 통과해 상원에서 계류 중이며, 법안 통과를 두고 이탈리아 내 진보와 보수 세력이 첨예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다.

교황청의 구술서를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진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서한에 대해 얘기하진 않겠지만, 유럽연합(EU) 개정조약은 인간의 다양성과 존엄성을 보호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리스본 조약이라고 불리는 이 조약은 2009년 발효된 EU의 헌법격으로 EU 시민들의 존엄성, 자유, 평등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몇년간 극우 세력이 정권을 잡으며 ‘혐오의 정치’를 펼친 탓에 성소수자 혐오가 되살아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폴란드에서도 지난해 우파 안제이 두다 정부가 들어선 이후 성소수자가 특정 장소에 입장하지 못하는 ‘LGBT 프리존’이 생겼고, 동성커플이 아이를 입양하면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헝가리 사회학자 타마스 돔보스는 헝가리의 성소수자 혐오 정책을 두고 “코로나19 대유행 부실 대응 비난을 피하기 위해 ‘공공의 적’을 만든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EU는 성소수자 혐오 정책을 펼친 나라들에 대한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헝가리와 폴란드에 민주주의 관련 EU 규칙을 어기는 일을 계속하면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독일, 프랑스, 아일랜드 등 EU 가입 14개국도 동성애 혐오 법안을 발의한 헝가리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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