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뒤엔 화마…캐나다 서부, 177개 동시다발 산불읽음

김윤나영 기자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에서 동북쪽으로 153㎞ 떨어진 리턴 마을이 1일(현지시간) 산불로 전소된 모습을 헬기에서 찍은 사진. 캐나다 서부가 최고기온 50도에 육박하는 폭염 때문에 시련을 겪는 가운데 이날 산불까지 발생해 리턴 마을이 통째로 불타면서 난민이 발생했다. 리턴|AP연합뉴스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에서 동북쪽으로 153㎞ 떨어진 리턴 마을이 1일(현지시간) 산불로 전소된 모습을 헬기에서 찍은 사진. 캐나다 서부가 최고기온 50도에 육박하는 폭염 때문에 시련을 겪는 가운데 이날 산불까지 발생해 리턴 마을이 통째로 불타면서 난민이 발생했다. 리턴|AP연합뉴스

49.5도의 살인적인 폭염이 지나간 캐나다 서부에 이번엔 화마가 덮쳤다. 170건 넘는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일부 마을이 전소하고, 수백 가구가 집을 잃고 대피했다. 지구온난화로 고온 건조해진 날씨가 산불을 키웠다.

캐나다 CBC방송은 3일(현지시간)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177건의 산불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소방당국은 특히 큰불이 난 캠루프스 지역에 소방관 131명과 헬리콥터 18대를 동원해 밤샘 진화 작업에 들어갔다. 인근 지역 500여 가구에는 긴급 대피 명령을 내렸다.

지난 1일부터 캠루프스 지역에서 시작한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서울 여의도 면적보다 넓은 450㏊가 소실됐다. 빌 블레어 공공안전장관은 “산불이 재앙적이고 전례 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길고 도전적인 여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턴 지역은 이날 화재로 마을이 거의 전소됐다. 리턴시는 지난달 29일 기온이 49.5도로 기상관측이 시작된 1800년대 후반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던 곳이다. 잔 폴더만 리턴 시장은 “15분 만에 마을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고 BBC에 말했다. 브래드 비스 리턴 시의원은 “마을의 90%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주민 1000여명은 소지품도 제대로 못 챙기고 대피했다.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리턴시에 사는 제프 채프먼은 “불이 난 집을 피해 부모님이 대피한 참호 위로 송전선이 떨어졌다”면서 “불길 때문에 참호 근처로 다가갈 수 없었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CBC에 말했다. 지역 주민 보니 닉슨은 “여동생을 잃었다. 동생이 살던 아랫집이 불에 타 사라졌다”고 말했다. 시는 경찰 100명을 투입해 실종자들을 찾고 있다.

소방당국은 화재의 원인 중 하나로 동시다발적인 번개를 지목했다고 CTV가 전했다. 캠루프스 주변에 번개가 1만2000번 쳤고, 그 여파로 80건의 산불이 동시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고온 건조한 날씨도 산불을 키웠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소방정보 책임자인 진 스트롱은 “폭염은 사라졌어도, 여전히 덥고 산불이 나기 쉬운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고 CBC에 말했다.

기록적 폭염이 덮친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대형 산불이 발생해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는 기온이 섭씨 49.6도까지 치솟는 기록적 폭염이 이어지는 데다 산불까지 기승을 부리자 일부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캠루프스|브리티시컬럼비아주 소방본부 제공·AFP연합뉴스)

기록적 폭염이 덮친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대형 산불이 발생해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는 기온이 섭씨 49.6도까지 치솟는 기록적 폭염이 이어지는 데다 산불까지 기승을 부리자 일부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캠루프스|브리티시컬럼비아주 소방본부 제공·AFP연합뉴스)

미국 12개주에서도 지난 1일부터 44개의 대형 화재가 발생해 28만㏊가 소실됐다. 미국 서부의 93% 이상이 현재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해 화재가 많이 발생해 소방관 상당수가 1000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했다고 전했다.

폭염 사망자도 늘고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는 지난달 25일부터 일주일간 719명이 돌연사했다. 통상적인 사망자의 3배에 달하는 인원이 숨졌다. 주 수석검시관인 리사 러포인트는 “주로 냉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주택에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지난주 기온이 42도 넘게 오른 미국 서부의 응급실도 열사병 관련 환자들로 붐볐다. 오리건주의 한 응급실 의사는 “코로나19 유행 최악의 단계에서도 이렇게 바빴던 적이 거의 없다”고 WP에 말했다. 워싱턴주 시애틀 병원의 응급의학과 의사인 데이비드 마켈은 “지난달 28일 새벽에 열질환 환자 12명을 치료했는데, 일부는 너무 상태가 심각해서 신장과 간 기능이 저하돼 있었다. 이런 일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구 온난화로 폭염 피해는 점점 늘고 있다. 세계 35개 연구기관이 지난해 12월 의학저널 랜싯에 발표한 연구를 보면, 2014~2018년 폭염으로 숨진 65세 이상 노인 수는 2000~2004년보다 1.5배 증가했다. 2018년 한 해에만 중국과 인도에서 불볕더위로 30만명이 사망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폭염은 침묵의 살인자”라고 했다.

더위는 허리케인도 부른다. 플로리다를 비롯한 미국 남부 주들은 허리케인 ‘엘사’ 상륙 소식에 긴장하고 있다.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공기 중 수증기의 양이 7%씩 늘어나 허리케인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 WP는 지구온난화로 10년마다 열대성 폭풍이 3등급 허리케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8%씩 증가해왔다고 지적했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부활절 앞두고 분주한 남아공 초콜릿 공장 한 컷에 담긴 화산 분출과 오로라 바이든 자금모금행사에 등장한 오바마 미국 묻지마 칼부림 희생자 추모 행사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황사로 뿌옇게 변한 네이멍구 거리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