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재확산 직면했는데… ‘백신 갈등’에 고심하는 서구사회

박용하 기자
프랑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으로 비상인 가운데 24일(현지시간) 수도 파리 도심 샹젤리제 거리에서 경찰이 코로나19 백신 증명서와 여권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파리 | AFP연합뉴스

프랑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으로 비상인 가운데 24일(현지시간) 수도 파리 도심 샹젤리제 거리에서 경찰이 코로나19 백신 증명서와 여권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파리 | AFP연합뉴스

코로나19 델타 변이(인도 변이) 확산으로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이 ‘4차 재확산’에 직면하고 있다. 신규 확진자가 올 봄 이후 최대치를 경신하며 다시 위기를 맞은 것이다. 이들 국가들은 백신 접종을 사실상 강제하는 고강도 조치까지 내놓았으나, 일부 시민들의 뿌리깊은 ‘백신 거부감’은 정부와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백신 확보조차 힘든 아프리카·아시아의 국가들과 대조적인 양상이다.

25일 현재 델타 변이의 확산세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심화되고 있다. 존스홉킨스대 집계를 보면 지난 23일(현지시간) 기준 미국의 신규 확진자는 11만8791명으로, 기존의 5만명대에서 약 2배 이상 늘어났다. 뉴욕타임스는 일부 주의 통계 방식이 변경된 것을 고려해 8만1732명의 보정치를 발표했다. 다만 이 역시 최근 추세와 비교할 때 크게 늘어난 것은 마찬가지다.

유럽에서도 올 봄 이후 최대 규모의 확진자가 나왔다. 프랑스는 24일 2만5624명이 늘어나 지난 5월5일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터키 역시 1만2381명의 신규 확진자를 기록하며 5월 중순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확진자 폭증으로 미국과 유럽은 방역 수위를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21일부터 영화관과 헬스장 등 50명 이상이 모이는 문화·여가 시설을 이용할 때는 백신 접종을 마쳤다는 사실을 기록한 증명서를 제시하게 했다. 이탈리아 역시 음식점 등 실내 다중 이용시설에 들어가려면 백신 접종했거나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증명하는 ‘그린 패스’를 의무적으로 제시하게 할 방침이다. 현재로선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델타 변이 확산에 대항할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대폭 제한하는 ‘초강수’를 마다하지 않는 국가들도 있다. 러시아 정부는 23일 “노동자가 합당한 이유 없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면 고용인은 해당 노동자를 임금 보존 없이 업무에서 배제하는 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내용의 방역 관련 권고를 발표했다. 노동권까지 제한하며 백신 접종을 요구한 것이다. 호주는 시드니와 인근 지역에 생필품 구매·의료·생업·운동 등 필수목적 이외의 외출을 금지하는 봉쇄령을 내렸다.

이같은 각국의 고강도 방역 조치는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지난 주말간 프랑스와 호주, 이탈리아, 그리스 등에서는 백신 접종을 유도하는 정부 방침 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었다. 프랑스에서는 11만명 이상이 시위에 참여했으며, 경찰과 물리적인 충돌을 빚었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백신 의무화’를 사실상 강제하는 각국 정부의 조치들은 서구 사회에 뿌리 깊은 ‘백신 거부감’도 건드렸다. 지난 주말 시위에 참석한 일부 유럽인들은 AP 등 현지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백신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몸에 대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코로나19 백신은 너무 실험적”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이는 소위 ‘백신 반대론자(Anti-Vaxxer)’들의 견해와 맞닿는 부분이다. 이들은 정부가 백신 접종을 강제하는 것은 개인의 건강권에 대한 침해이며, 제약회사의 이해 관계에 따라 안전하지 않은 백신이 유통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해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백신이 돌연변이를 만들 수 있다”는 식의 음모론이 나돌아 문제가 됐다.

백신 반대론은 서구 국가들이 집단면역에 도달하기 위한 마지막 난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그간 ‘백신 국가주의’라는 비판을 감수하며 백신 물량을 확보해왔으나, 아직 40~50% 수준의 접종률에 정체된 상태다. 백신을 구하지 못해 고충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국가들과 대조적인 양상이다.

향후 유럽 각국이 백신 접종을 강제하는 조치를 확대하면 정부와 백신 반대론자들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이에 일부 종교·정치단체의 움직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종교의 정치적 영향이 큰 그리스의 경우, 그리스정교 일부 성직자들이 백신 반대론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어 방역 당국이 고충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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