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성폭행 눈감은 '영부인 겸 부통령'… 독재자보다 무서운 니카라과 영부인읽음

박용하 기자
오르테가 대통령 부부가 2018년 9월 수도 마나과에서 대중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마나과 | AP연합뉴스

오르테가 대통령 부부가 2018년 9월 수도 마나과에서 대중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마나과 | AP연합뉴스

남미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야권 대선후보였던 1998년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딸 조일라메리카 나바에스(당시 30세)가 “11살부터 19살까지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며 대권 후보 초유의 친족 성폭행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협력자가 등장했다. 그의 아내 로자리오 무리요(70)가 딸에 맞서 남편을 두둔하고 나섰다. 성폭력 의혹은 결국 규명되지 못했고, 오르테가는 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최악의 스캔들에서 남편을 구한 무리요는 2006년 오르테가의 대선 승리를 이끌며 정계 중심으로 진입했다. 2016년에는 세계 최초로 영부인 겸 부통령에 올랐으며, 오는 11월 연임을 노리고 있다. 라프렌사 등 남미 현지매체들은 2일(현지시간) 오르테가의 대선 후보 선출 소식을 알리며 “무리요는 이번에도 러닝메이트로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무리요는 1984년부터 6년여간 이어진 오르테가의 첫 대통령 재임 시기만 해도 영욕의 아이콘은 아니었다. 한 때 시인이자 기자였던 그는 언변이 좋고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외국어에도 능통해 대중으로부터 적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화려한 패션을 즐겨 ‘제2의 에비타’로 불리기도 했다.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이었던 에바 페론을 말한다. 독재와 싸운 이력도 매력적이었다. 그는 미국을 등에 업고 46년간 권력을 이어온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정권의 독재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다 오르테가를 만나 결혼했다. 1979년 7월 검은색 베레모를 쓰고 어깨에 소총을 멘 채 좌익 무장단체인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사령관들과 함께 있는 사진은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한때 혁명가였던 이들 부부는 2007년 재집권 이후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웠다. 무리요는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며 국가 중대사에 관여했고, 오르테가는 2014년 재임 횟수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켜 종신 집권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2016년 대선에서는 무리요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해 “새 왕조를 만들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무리요가 부통령이 된 뒤 니카라과의 민주주의는 더 위태해졌다. 정부와 군, 언론을 완전히 장악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에겐 관용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2018년에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해 32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가톨릭과 뉴에이지, 샤머니즘 등이 결합된 기이한 행적들도 대중들의 비판을 받았다. 그는 평소 히피를 연상케하는 화려한 옷들과 보석을 착용하고, 공식 성명에서는 사랑과 평화 등의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반면 반대자들에게는 “피에 목마른 흡혈귀”라는 비난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 ‘생명의 나무’라 이름붙인 거대한 건축물들을 세우는가 하면, ‘파티마의 손’과 같은 이슬람 사회의 부적도 즐겨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리요는 최근 정권 연장을 위해 야권 인사에 대한 정치적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 니카라과 정부는 지난해 12월 테러리스트나 반역자로 규정한 사람의 출마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를 근거로 유력 대선주자 7명을 포함해 30명 넘는 야권 인사들을 체포했다. 유럽연합(EU) 이사회는 무리요을 포함해 니카라과 민주주의를 악화시킨 8명을 대상으로 EU 내 자산 동결, 입국 금지 등의 제재를 부과했다. EU는 성명에서 “니카라과의 7번째 대선 후보가 구금된 것은 이 나라에서의 심각한 정치적 탄압과 암울한 선거 전망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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