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세계는 지금 ‘일자리 보장제’ 노크 중

실업자가 없는 세상 향해 전진읽음

김윤나영 기자

일자리 보장제·공공근로·기본소득 비교

아르헨티나의 한 노인이 16일(현지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실업과 식량 불안정 등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 로이터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한 노인이 16일(현지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실업과 식량 불안정 등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 로이터연합뉴스

일자리 보장제 - 정부가 비자발적 실업자에게 취직 대가로 생활임금 지급 및 고용 보장
공공근로 - 노인 등 대상 한시적 저임금 일자리 제공
보편적 기본소득 - 모든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현금 제공

‘실업률 제로’ 완전 고용 추구
미국, 뉴딜정책에 뿌리 두고
지난 대선에선 샌더스 공약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일자리 보장제가 주목받고 있다. 일자리 보장제란 국가가 비자발적 실업자에게 생활임금을 주고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미국에선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그 뿌리가 있다.

일자리 보장제의 특징은 영구적인 실업률 제로 상태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고용 안정과 생활임금, 완전 고용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노인 일자리에 국한되거나 한시적 저임금 일자리를 제공하는 공공근로 개념과는 다르다. 또 실업자들이 취직하는 대가로 돈을 준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현금을 제공하는 보편적 기본소득과도 다르다.

미국에서 일자리 보장제는 그린뉴딜 정책과 결합한 개념이다. 공공 일자리를 통해 지역사회가 건강 위기, 불평등 위기, 인종정의 위기, 기후 위기 등 각종 지역 현안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연방 정부가 각 지역에 고용사무소를 만들면 지역사회와 지방 정부가 풀뿌리 민주주의를 통해 필요한 일자리를 만든다.

일자리 보장제를 본격적으로 정치 쟁점화한 사람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모두를 위한 일자리(Jobs for all)’ 공약을 제시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다. 샌더스 의원은 그린뉴딜 관련 일자리 2000만개와 노인·장애인 의료 일자리 수백만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공 일자리로 기후 위기 대응 인프라를 구축하고, 노인·장애인·어린이에게 돌봄 노동을 제공하자고 제안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일자리 보장제에는 반대했지만, 최근 보육·의료·교육·기후변화 대비 인프라 건설에 쓸 3조50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을 추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인도·오스트리아의 실험

인도 ‘농촌 고용 보장법’ 이후
최저임금 오르고 빈곤 줄어
아르헨·오스트리아도 실험
국가 예산·양질 일자리 ‘숙제’

각국에서 일자리 보장제가 전국적으로 도입된 사례는 아직 없다. 아르헨티나, 인도, 오스트리아 등의 일부 지역사회에서 비슷한 실험을 한 적 있다.

외환위기를 겪은 아르헨티나는 2001년부터 빈곤층을 상대로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 ‘제페스’를 도입했다. 국내총생산(GDP)의 1%를 들여 200만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제페스에 참여하려면 가정에 어린이, 장애인, 임산부가 있어야 했고 가구당 1명만 참가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지역사회 서비스나 소규모 건설 및 유지 보수 활동에 하루 4시간씩 참여하고 한 달에 150페소를 받았다. 민간 일자리에서 밀려난 여성 가장들이 대거 이 사업에 참여했다. 여성 참가자는 제도 도입 초기 60%에서 75%로 늘었다.

인도는 2005년부터 모든 농촌 거주자에게 공공 부문 고용 기회를 약속하는 ‘농촌 고용 보장법’을 도입했다. 정부가 원하는 모든 농촌 거주자에게 15일 이내에 일자리를 안내하고 연간 최소 100일간 고용하도록 규정한다. 한시적 사업을 벌인 아르헨티나와는 달리 인도는 법제화를 통해 제도의 안정성을 확보했다. 인도의 실험은 실질적인 최저임금 인상과 빈곤 감소 효과를 가져왔다. 미국 버지니아대와 샌디에이고대 연구진은 지난 6일 발표한 논문에서 농촌 고용 보장법 도입 이후 인도의 저소득 가구 소득이 13.3% 증가했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의 마리엔탈 마을에서는 옥스퍼드대 연구진과 지방 정부가 지난해 11월부터 ‘공공 고용 서비스’ 실험을 벌이고 있다. 이 제도는 12개월 이상 실직한 모든 주민에게 적절한 급여를 받는 직업을 보장한다. 참가자들은 2개월간의 직업훈련을 거쳐 보육, 커뮤니티 카페 설립, 정원 가꾸기, 주택 개조 등 분야에 투입됐다. 지역사회가 740만유로를 들여 3년간 실험을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1년간 1인당 실업 비용이 약 3만유로인 반면 이 프로젝트 예산은 참가자당 2만9841유로로 책정됐다. 참가자들은 지역사회에 38만3000유로의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리엔탈 마을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여파로 섬유공장이 문을 닫고 120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던 곳이다.

■미국인 64% “일자리 보장제 찬성”

[똑똑…세계는 지금 ‘일자리 보장제’ 노크 중]실업자가 없는 세상 향해 전진

미국에서는 코리 부커 민주당 상원의원이 2018년 전국 15개 지역에서 3년간 일자리 보장제 시범사업을 도입하는 ‘연방 고용 보장 개발법’을 발의했다. 지역사회가 모든 실업자에게 시급 15달러의 공공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내용이었다. 이 법안은 의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정치권에서 비현실적이라고 외면받던 일자리 보장제는 코로나19 이후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다. 미국의 진보 싱크탱크 ‘진보를 위한 데이터’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64%가 경제 위기에 대한 정부 대응책으로 “연방 일자리 보장제를 지지할 것”이라고 답했다. 갤럽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코로나19 기간 실직자에게 공공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안에 대해 93%가 찬성했다. ‘코로나19 기간 실업자 지원 방안’에 대해 응답자들은 일자리 제공(46%), 긴급재난지원금 지원(25%), 일자리 교육 기회 제공(13%) 순으로 꼽았다.

일자리 보장제 옹호론자들은 이 정책이 경제 호황기에도 인종 간 불평등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미국의 인종별 실업률은 백인이 7.3%로 전체 인종 중 가장 낮았다. 흑인 11.4%, 히스패닉계 10.4%, 아시아계 8.7%였다. 비백인,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가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 보장제 옹호론자들은 노동권을 교육권과 같은 기본권으로 본다. 경제학자 파블리나 체르네바는 “우리는 자연실업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린이의 95%가 공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나머지 5% 어린이가 공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유했다.

■예산·저질 일자리 우려도

일자리 보장제 도입을 위해서는 장애물도 많다. 첫째는 비용이다. 미 연구진은 2018년 ‘연방 일자리 보장제’ 도입에 1인당 5만5820달러가 든다고 가정하면 연간 6540억~2조1000억달러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제도의 수혜자들이 고용되면서 세수가 늘어나고 푸드 스탬프(저소득층 식료품 구입권) 등 다른 복지 비용이 줄어들어 비용은 상쇄될 수 있다고 봤다.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복스는 “일자리 보장제는 평소에 있으면 좋겠지만 경제 호황기에는 없앨 수 있는 일자리를 이상적으로 제공해야 하는데 그것들을 식별하기 꽤 어렵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연방정부의 일자리 제공이 맥도널드나 월마트 같은 저임금 고용주의 고용 방정식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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