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 타고 퍼진 ‘스트롱맨 바이러스’읽음

이윤정 기자

‘합법적 통제’ 명목 삼아

인도네시아·벨라루스 등

권위주의 정권 더 늘어나

“팬데믹, 독재자에 기회…

절차 무시 후 정적 투옥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민주주의가 확실히 뿌리내리지 못한 나라에서 권위주의 정부로의 회귀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첫 서민 출신 대통령이었던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왼쪽)은 ‘위도도 왕국’을 꿈꾼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고,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가운데)은 야권 운동가를 체포하기 위해 외국 항공기를 강제 착륙시키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군사독재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고 있다. AFP·AP·EPA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민주주의가 확실히 뿌리내리지 못한 나라에서 권위주의 정부로의 회귀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첫 서민 출신 대통령이었던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왼쪽)은 ‘위도도 왕국’을 꿈꾼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고,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가운데)은 야권 운동가를 체포하기 위해 외국 항공기를 강제 착륙시키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군사독재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고 있다. AFP·AP·EPA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함께 권위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팬데믹 대처를 이유로 정부의 권한은 극대화된 반면 그에 대한 통제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정권이 권력을 잡은 국가뿐 아니라 헝가리, 캄보디아, 인도 등 유럽과 아시아 곳곳에서 ‘스트롱맨’ 리더십이 견고하게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도 권위주의 지도자 대열에 합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 유력 시사주간지 템포는 지난주 옴니버스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남학생이 경찰에게 뒤통수를 짓밟히는 등 잔혹하게 폭행당한 후 심한 충격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져 공분이 일고 있다고 14일 보도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 5일 의회가 70여개 법률 1200여개 조항을 일괄 제·개정하는 905쪽 분량의 옴니버스법을 통과시키자 시민들이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부는 옴니버스법을 고용창출법이라 부르며 일자리 창출, 투자 유치 등의 내용을 담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 법이 무기한 계약직 허용, 최저임금·퇴직금 감축 등 노동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위도도 대통령은 친서민 정책으로 2014년 정권을 잡았다. 군부나 기성 정치권 출신이 아닌 첫 서민 출신 대통령이지만 2019년 재선에 성공한 이후 코로나19 방역 실패, 경제정책 실패 등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위도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의회의 80%를 장악했고, 대통령의 아들과 사위가 모두 시장직에 오르면서 ‘위도도 왕국’을 꿈꾸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고 13일 전했다.

팬데믹 이후 인도네시아처럼 민주주의가 견고하게 자리 잡지 못한 나라들에서 권위주의가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고 AP통신은 지적했다. 지난 5월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야권 운동가가 탑승한 외국 항공기를 강제 착륙시키면서 비행기 납치 비판까지 제기됐다.

빅토르 오르반, 나렌드라 모디

빅토르 오르반, 나렌드라 모디

시민단체를 탄압하고 언론을 장악하는 등 공포 정치를 펼쳐온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이끄는 의회는 지난 6월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고,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을 일주일 앞둔 지난 6월24일 홍콩에서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민주적 성향의 언론매체 빈과일보가 폐간됐다. 장기 집권을 꿈꾸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군사 독재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며 법원·의회와 각을 세우고 있다.

팬데믹에 대처한다며 과도한 권한을 위임받은 정부가 시민들을 검열하고 야권 지도자를 축출하는 일은 ‘뉴노멀’이 됐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정부의 팬데믹 대처 부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잠재우려 경찰에 온라인 콘텐츠 검열을 지시했고, 반정부 목소리를 내는 언론인들을 체포했다. 캄보디아에서는 방역법을 어겼다며 정부 비판 시위에 참가한 야권 운동가들을 모조리 체포해 재판에 넘겼다. 캄보디아계 미국인 인권변호사 테어리 셍은 AP통신에 “팬데믹은 독재자에게 꿈이자 기회”라면서 “권위주의 정부들이 코로나19를 핑계로 정당한 절차 없이 정적들을 투옥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비상사태 기간에 정부의 권한은 강화된 반면 이를 감시할 의회나 시민사회의 기능은 약화됐다. ‘의회 민주주의 본산’으로 불리는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3월 이후 집권 보수당이 비상사태를 이유로 법안을 다수 도입했지만 의회에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야당인 노동당 정치인 앤 테일러는 “보수당이 도입한 새로운 법안들에는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이 전례 없이 많이 포함됐지만 이런 법안에 대한 의회의 감시는 극히 제한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올해 노벨 평화상이 권위주의 정권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에게 돌아간 것도 세계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늘어가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해석했다.

AP통신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와 정부의 긴축 정책이 반복되는 동안 유럽과 북미에서 포퓰리즘을 내세운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득세하게 됐다”면서 “15년간 세계로 복제되다시피 한 권위주의는 팬데믹을 맞아 가속도가 붙었다”고 평가했다.

<권위주의 전염병>의 저자인 런던 정경대 연구원 루크 쿠퍼는 “100년 만의 세계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로 정부가 과도한 권력을 갖게 됐다”면서 “국가가 사회를 관리하고 공공재를 나누는 큰 세력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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