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심야 전철서 벌어진 성폭행 외면한 승객들···경찰 "개탄스럽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전철에서 한 여성이 강간 피해를 당했음에도 다른 승객들이 이를  외면한 사건이 벌어졌다. 해당 전철을 운영하는  동서부 필라델피아 교통국(SEPTA) 앤드루 부시 대변인의 해당 사건 관련 성명.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전철에서 한 여성이 강간 피해를 당했음에도 다른 승객들이 이를 외면한 사건이 벌어졌다. 해당 전철을 운영하는 동서부 필라델피아 교통국(SEPTA) 앤드루 부시 대변인의 해당 사건 관련 성명.

미국 대도시 전철에서 한 여성이 성폭행 피해를 당하는데도 같은 객차 안에 있던 다수의 승객들이 이를 외면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은 승객들이 힘을 합쳐 범인을 제압하거나 경찰에 신고만 했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개탄했다.

뉴욕타임스와 AP통신 등 미국 언론들은 17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전철 안에서 지난 13일 밤 한 여성이 30대 남성으로부터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승객들이 이를 목격하면서도 외면했다고 보도했다. 사건은 필라델피아의 주요 전철 노선인 마켓-프랜크포드 라인을 운행하는 전철에서 밤 10시쯤 벌어졌다. 해당 노선은 평일에 평균 9만명 가량이 이용하고 있다.

해당 노선을 운영하는 동서부 필라델피아 교통국(SEPTA)과 경찰의 설명에 따르면 흑인 홈리스로 여러 전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 용의자 피스톤 응고이(35)가 한 여성 뒷자리에 앉아 신체 접촉을 시도했다. 피해 여성은 응고이를 밀쳐내며 저항했지만 그는 피해자를 완력으로 제압했다. 앤드루 부시 SEPTA 대변인은 “그런 다음 그는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옷을 벗겨내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부시 대변인은 성명에서 “객차 안에서 이 끔찍한 행위가 벌어지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서 “만약 한 사람이라도 911에 신고했더라면 더 일찍 중단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은 해당 열차가 지나갈 때 인근에 있던 SEPTA의 한 직원이 열차 안에서 뭔가 잘못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하고, 다음 역에 기다리고 있던 경찰이 응고이를 체포하고 피해 여성을 구조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응고이는 흉기나 총기를 휴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뉴욕타임스는 약 8분 동안 성폭행이 벌어지는 동안 같은 객차에 있던 승객 어느 누구도 개입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어퍼 다비 타운십 경찰서의 티모시 번하트 서장은 “아무도 이 여성을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끔찍하다”면서 “해당 열차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은 스스로 거울을 바라보고 왜 개입하지 않았고,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응고이의 범죄 장면은 객차 안에 설치돼 있던 폐쇄회로(CC)TV에 그대로 녹화돼 있는 상태다. 번하트 서장은 수사관들이 객차 안에 있던 승객의 정확한 숫자를 파악 중이라면서 당시 12명은 넘지 않지만 여러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성폭행을 외면한 승객들에 대한 비난이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쇄도하고 있다. 해당 승객들이 피해자를 구조하거나 범죄 신고를 하기는 커녕 그들의 휴대전화로 범죄 장면을 녹화하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번하트 서장은 일부 승객이 범죄 장면을 녹화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알고 있다면서도 사실 여부에 대해선 확인해주지 않았다. 다만 그는 CCTV가 음향은 녹음하지 않았지만 영상 분석만으로도 승객들이 개입할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고 밝혔다. 다른 승객들이 범죄 장면을 인지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1964년 3월 뉴욕주 퀸즈에서 벌어진 키티 제노비스 살해 사건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시 술집 매니저로 일하던 28세 여성 제노비스는 새벽 3시쯤 귀가하다 아파트 인근에서 윈스턴 모슬리라는 29세 남성에게 30분 넘도로 흉기로 난도질 당했다. 제노비스는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요청했는데 아파트 주민 어느 누구도 돕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 사건은 범죄 현장이나 긴급 상황을 목격하면서도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는 나설 것이라고 생각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방관자 효과’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총 38명의 아파트 주민들이 창가에서 이 사건을 목격했음에도 아무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훗날 해당 보도가 과장됐으며 아파트 주민 일부가 경찰에 신고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뉴욕타임스는 2016년 해당 기사가 목격자 수와 그들의 행위에 관해 광범위하게 과장되는 등 결함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범죄학자인 알렉시스 피케로 마이애미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범죄 현장 목격자가 개입하지 않는 것은 가해자로부터 복수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나 다른 사람이 개입할 것이란 믿음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면서 “우리가 항상 경찰에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 책임은 집단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누군가가 공격을 당하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이 옳은 행동을 하는 세상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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