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탄소세’ 도입하면 세계 무역 흐름 바뀔 수도

이윤정 기자

미국·유럽 등 ‘문턱 높이기’

개도국들 관세 부담 늘고

자국 기업엔 인센티브 효과

WTO “혼란 위험” 경고

세계 최대 무역 분쟁 우려도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탄소국경세 도입 계획을 밝히면서 세계의 무역 흐름이 바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면 친환경기술을 쉽게 개발하기 어려운 개발도상국들은 더 많은 관세를 내야 하지만 첨단기술로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보유한 미국·유럽 등은 자국 기업에 사실상 인센티브를 주는 효과를 얻는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3일(현지시간) 탄소국경세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도록 다른 나라들을 설득하는 효과보다 기후변화를 명분으로 고도화된 무역 보호주의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고 있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에서 탄소국경세 도입은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을 계획이었지만 지난 2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침묵을 깨고 탄소국경세에 대해 언급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EU가 탄소를 배출하는 원자재 수입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세 계획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만약 여러분이 EU 시장에 더러운 제품을 가지고 온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미국과 EU는 보복 관세를 중단하고 탄소국경세 도입 등에 적극 나서기로 합의했다. 서로에 대한 관세를 완화하는 대신 탄소배출의 주범인 중국 등의 수입품에 보다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기로 한 것이다.

EU는 이미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기에너지 등 5개 수입품목의 역내 수입업자는 탄소국경세 인증서를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한다고 공식화한 상태다. EU는 2026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는 등 강도 높은 탄소배출 감축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미국도 비슷한 품목에 유럽보다 빠른 2024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 컨설팅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은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면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중국, 우크라이나 철강회사보다 캐나다, 한국 등의 기업이 유럽 내 시장점유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유 시장에서도 석유 추출 과정에서 탄소를 그나마 덜 배출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 캐나다 등보다 경쟁력을 얻을 것이라 진단했다.

하지만 결국엔 선진국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탄소를 배출하는 수입품에 부과하는 탄소국경세는 사실상 ‘추가 관세’여서 선진국들이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기업들은 이미 청정 산업 기술을 개발했지만, 후발주자인 개발도상국들의 기업은 이런 기술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정치적으로 탄소국경세를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그동안 환경정책에 반감을 보인 공화당에서도 탄소국경세가 자국 기업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반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에너지 고문이었던 조지 데이비드 뱅크스는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면 공급망이 미국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라면서 “중국과의 무역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 공화당 지지자들이 기후 의제를 다르게 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무역기구(WTO)는 탄소국경세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세계 각국의 협력을 이끌기보다는 혼란과 보복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개별 산업 시설의 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조작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 러시아 등은 EU의 탄소국경세가 보호무역을 위한 조치라며 WTO에 항의하고 있다.

앨런 울프 전 WTO 사무차장은 “개발도상국들이 집단적으로 탄소국경세에 반발할 방법을 찾아나설 것”이라며 “탄소국경세로 세계 최대의 무역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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