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핵협상 5개월 만에 재개…기싸움 계속될 듯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각국 대표단 핵합의 복원 협상

이란 “제재 먼저 풀어라” 요구

미국 “조항 위반 먼저 되돌려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 앞에 게양된 회원국 깃발 가운데 이란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비엔나|AP연합뉴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 앞에 게양된 회원국 깃발 가운데 이란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비엔나|AP연합뉴스

이란 핵합의(JCPOA) 복원을 위한 협상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29일(현지시간) 재개된다. 이번 회담은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 시절인 2015년 타결됐으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재협상을 요구하며 일방적으로 탈퇴함으로써 기능 정지 상태에 빠진 JCPOA의 복원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중대 갈림길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과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 각국 대표단은 주말 동안 JCPOA 복원을 위한 7차 협상을 앞두고 오스트리아 빈에 속속 도착했다. 이란과 JCPOA 서명국들은 지난 4월 핵합의 복원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으나 지난 6월 이란 대선에 즈음해 협상이 잠정 중단됐다. 5개월만에 재개되는 이번 협상은 대미 강경파인 에브라임 라이시 이란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열리는 자리다. 미국은 앞선 협상과 마찬가지로 대표단은 파견하지만 협상에는 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지난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JCPOA 복원을 주요 국정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이란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일방적으로 JCPOA를 탈퇴한 것을 비난하며 JCPOA가 복원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은 서로 상이한 전제조건을 내세우며 대립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부활시킨 이란에 대한 제재를 먼저 풀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이 JCPOA에서 일방 탈퇴했던 책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향후 미국에 다른 대통령이 취임하더라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을 해줄 것도 요구 중이다. 반면 미국은 이란이 2018년 이후 순차적으로 JCPOA 조항을 위반해온 것부터 먼저 되돌려야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입장이다.

JCPOA는 핵탄두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농축 양과 수준, 우라늄 농축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 수량 등을 규제하고 있는데 이란은 미국의 JCPOA 일방 탈퇴 및 제재 복원에 반발해 이를 순차적으로 위반해 왔다. 이란이 보유한 농축 우라늄은 JCPOA가 정한 양을 수 배 초과했으며, 일부 우라늄의 농축 수준은 60%까지 끌어올렸다. 원심분리기도 수백개 이상 확대 설치했고, 과거 폐쇄했던 핵시설 봉인도 뜯어 재가동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 정부가 겉으로는 JCPOA 복원을 원한다고 밝히면서도 협상을 끌면서 핵능력을 신장시키려는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란의 핵능력이 더 향상되면 2015년 체결된 핵합의 틀로 규제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협상의 창이 영원히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로버트 말리 국무부 이란 특사는 지난달 핵협상 재개와 관련해 “이란 핵합의를 되살릴 수 있을지 보려는 노력이 결정적 국면에 있다”면서 “우리가 여러 달에 걸쳐 협상 공백기를 보냈고 이란이 공백기와 관련해 제시하는 공식 이유는 점점 타당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미 정부 고위 관료를 인용해 지난 6월 협상이 중단될 당시 미국과 이란이 이행해야 할 사항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핵합의 복원 여부가 기술적 문제보다는 정치적 결단의 문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일단 어두운 전망이 많다. 대미 강경파인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손쉽게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이란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가는 국내적으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이란 반관영 ISNA 통신 등은 빈에 도착한 이란 협상팀이 러시아와 중국 대표단과 만나 공조를 모색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2015년 JCPOA 타결 당시 이란의 핵능력 억제를 위한 서방의 압박에 동참했지만, 핵협상 개재를 둘러싸고 이란 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란 대표단을 이끄는 알리 바게리카니 외무부 차관은 엔리케 모라 유럽연합(EU) 대외관계청 사무차장과 만나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미국의 제재를 한꺼번에 해제하는 방안 외에는 어떠한 합의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측은 이란이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다른 선택지를 고려할 것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BBC방송은 미국이 거론하는 다른 선택지는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에 대한 군사 공격 또는 사이버 공격을 뜻한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핵협상이 끝내 좌초될 경우 이란 핵능력을 분쇄하기 위한 ‘플랜B’가 필요하다면서 이란 핵시설에 대한 군사적 타격을 불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든 정부는 JCPOA 복원을 중동 정책의 출발점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란을 압박하면서도 외교적 대화를 지속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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