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평등 향해 한발짝"…칠레, '동성 결혼 합법화' 법안 통과

김혜리 기자

가톨릭 국가 칠레에서 동성 간 결혼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칠레 의회가 7일(현지시간) 동성 간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대통령 관저인 모네다 궁전이 LGBTQ+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조명으로 물들었다. | EPA연합뉴스

칠레 의회가 7일(현지시간) 동성 간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대통령 관저인 모네다 궁전이 LGBTQ+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조명으로 물들었다. | EPA연합뉴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7일(현지시간) 칠레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상·하원을 모두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법안은 상원에선 찬성 21표와 반대 8표, 하원에선 찬성 82표와 반대 20표를 얻으며 양원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로써 칠레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캐나다, 영국, 미국 등의 뒤를 이어 전 세계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31번째 국가가 됐다.

인권활동가 등 동성 결혼 합법화를 지지해온 이들은 법안 통과를 환영했다. 칼라 루빌라 칠레 사회개발부 장관은 “우리는 사랑이 사랑임을 인정함으로써 정의와 평등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말했다. 21년 함께해온 연인과 결혼하기 위해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는 라몬 로페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은 기분”이라며 “오늘은 상징적인 날”이라고 AFP통신에 말했다.

칠레는 가톨릭 인구가 다수인 중남미 국가 중에서도 보수적인 편에 속한다. 지난 2004년 이혼이 합법화됐고 2017년이 되어서야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할 때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낙태가 허용되기 시작했다. 결혼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입양, 상속 등에 관한 규정을 정한 ‘시민결합법’은 2010년부터 추진됐지만 2015년에서야 의회를 겨우 통과했다. 하지만 ‘시민결합’ 상태인 동성 커플에겐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지 않았다.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서 동성 커플들은 이제서야 자녀에 대한 친권을 갖고, 아이를 합법적으로 입양할 수 있게 됐다.

동성 결혼 합법화 법안은 지난 2017년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이 처음 발의했지만 2018년 보수 성향의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졌다. 하지만 피녜라 대통령은 지난 6월 동성 간 결혼을 지지한다면서 의회에 오래 묶여 있던 법안이 긴급 처리되도록 할 것이라 밝혔다. 동성 간 결혼을 반대해왔던 그는 “사랑할 자유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가정을 꾸릴 자유 등 자유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면서 “모든 이들에게 이같은 자유와 존엄성을 보장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동성 간 결혼이 피녜라 대통령의 임기 말기에 겨우 합법화되면서 다음 정권에서는 성 소수자의 권리를 얼마나 무게감 있게 다룰지도 시민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칠레는 오는 19일 대선 결선 투표를 치를 예정이다. 학생 운동가 출신 좌파 후보 가브리엘 보릭과 극우 성향의 전 하원의원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후보가 경쟁한다. 카스트 후보는 7일 복음주의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결혼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며 새로운 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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