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영토 되찾겠다” 다시 ‘이즘’의 시대 외치는 푸틴·시진핑

이윤정 기자

러·중, 국경서 갈등 상황 촉발…서방·나토 위협하는 21세기 ‘실지회복주의’

“옛 영토 되찾겠다” 다시 ‘이즘’의 시대 외치는 푸틴·시진핑

군사강국 러시아와 중국이 ‘옛 영토를 되찾겠다’며 내세운 실지회복주의(Irredentism)가 21세기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주의(이즘·ism)’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각각 옛 영토인 우크라이나와 대만을 회복하려는 러시아와 중국의 실지회복주의가 일촉즉발의 지역 안보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찰스 레인은 15일(현지시간) “공통적인 문화·역사적 배경을 앞세워 다른 나라 영토를 획득하려는 실지회복주의가 21세기 평화를 위협하는 대표적 ‘주의’가 됐다”면서 러시아와 중국 사례를 들었다.

러시아는 최근 10만명이 넘는 군사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하며 침공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 또한 대만해협에서 연일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국경분쟁을 벌이고 있는 인도 접경 지역에서도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실지회복주의는 타국 영토에서 인종·언어적 공통점이 있는 지역을 병합하려는 운동을 뜻한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이 오스트리아 영토의 이탈리아인 거주지를 점령하려는 ‘이탈리아 이레덴타(irredenta·미회수)’ 운동에서 유래했다. 이탈리아가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 합류한 것도 이웃 나라의 이탈리아인 거주지를 전리품으로 얻어가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베르사유조약에서 이탈리아가 원하던 지역을 병합하지 못하자 이에 대한 불만이 베니토 무솔리니 정권의 파시즘을 태동하게 했다.

세계대전 이후에도 실지회복주의는 국경을 맞댄 나라들에 갈등의 씨앗을 뿌렸다. 1970년대 소말리아는 에티오피아 오가덴에 소말리아인들이 거주한다는 이유를 들어 침공했고, 1990년대 이라크 또한 석유 자원을 노리고 쿠웨이트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은 미국과 서방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 20세기 실지회복주의 움직임과 다르다. 러시아의 위협을 받는 우크라이나는 미국,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등 서방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대만과 인도도 우방국인 미국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해왔다.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 제재 방안을 두고 고심하는 와중에 대만과 인도를 향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까지 겹치면서 더 골머리를 앓게 됐다”며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압력에 대항하는 지렛대로 ‘국경분쟁’을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전방위적 압력에 대응하는 전략적 ‘반미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걸고 동맹국들을 규합하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5일 화상 정상회담을 갖고 포괄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를 강화했다.

특히 두 정상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서 불거지고 있는 군사 안보와 관련한 논의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 대통령은 대만에 대한 중국 입장을 적극 지지하며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중국의 공개적 지지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과 나토가 실지회복주의를 앞세운 두 나라를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점이다.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핵무기 보유국인 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도 행사할 수 있다.

미국과 나토는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에 일단 ‘대화’를 시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미국과 유럽연합(EU)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도 대화로 사태를 해결하려 했지만 큰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레인은 “중국과 러시아의 ‘원하는 것을 보장해주면 군사적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은 함정에 불과할 수 있다”면서 “일례로 홍콩과의 ‘일국양제’ 약속을 보란 듯이 어긴 중국이 대만 등 다른 아시아 나라들에도 마찬가지 행보를 보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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