윅픽

‘분쟁’이 기아를 만든다

박병률 기자

제임스 카메론의 기념비적인 영화 <타이타닉>을 기억하시나요? 영국 사우스햄턴을 출발했던 타이타닉호는 아일랜드 퀸즈타운을 지나 미국 뉴욕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타이타닉 3등실에는 특히 아일랜드인들이 많이 타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배고픔 때문이었습니다. 아일랜드는 1800년대 중반 극심한 기근을 겪었습니다. 이른바 ‘아일랜드 대기근’(Great Famine)이라고 부르는 사건인데요, 아일랜드 인구 4명 중 1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이 여파는 20세기까지 이어집니다. 수많은 아일랜드인들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조국 아일랜드를 떠납니다. 인구 800만명 중 100만명이 해외이주를 택했습니다만, 이들 중 60%는 각종 질병과 배고픔으로 배에서 죽습니다. 현재 아일랜드 인구는 400만명으로 아직도 대기근 전의 인구(800만명)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아일랜드는 19세기보다 인구가 적은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아일랜드의 역사를 길게 설명한 것은 ‘컨선월드와이드(Concern World Wide)’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컨선월드와이드는 아일랜드 정부와 시민이 지원하는 국제 기아 구호 NGO입니다. NGO를 국제기구나 종교단체가 아닌 특정 국가가 지원한다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지난 2015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지부를 설립했는데 한국을 주목한 것은 한국의 처지가 아일랜드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식민지를 경험했고, 가난하게 시작해 부를 이룬 경험도 유사합니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도 바뀐 것도 전세계에서 ‘유이무이’합니다.

[윅픽]‘분쟁’이 기아를 만든다

아일랜드는 1980년 후반까지도 유럽의 가난한 나라였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적극적인 개방정책과 IT산업, 금융업을 발전시키면서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 7만5000달러의 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아일랜드는 이 같은 부를 이뤘지만 가난했던 과거를 잊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컨선월드와이드는 매년 세계기아지수를 발표합니다. 2021년 올해 세계에서 가장 기아가 심각한 나라는 소말리아였습니다. 이어 예멘,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차드, 콩고민주공화국, 마다가스카르 등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올해 기아의 주된 원인은 ‘코로나19’가 아닌 ‘분쟁’이었습니다. 실제 소말리아, 예멘, 콩코, 차드 등 기아 상위 10개국 중 8개국은 쿠데타가 일어났거나 내전 중인 국가라고 합니다. 분쟁이 일어나면 농업과 사회 기간망이 파괴돼 경제가 성장하기 힘듭니다. 북한도 21위에 올라있습니다. 앙골라, 르완다, 수단 등과 기아 수준이 비슷했습니다. 한반도가 분쟁지역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북한의 기아도 ‘분쟁’과 떼놓고 설명하기 힘듭니다.

북한을 비롯 세계 30개국에서 활동하는 컨선월드와이드는 “세상에서 굶주림보다 잔인한 것은 없다”(Nothing kills like hunger)고 말합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30년 전만 해도 우리도 국제기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갚아야 할 빚이 분명히 있다는 얘깁니다. 아일랜드 정부와 컨선월드와이드의 활동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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