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대북 추가 제재 사실상 무산…중·러가 보류 요청읽음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김정은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제8기 제6차 정치국 회의를 열어 미국 대응방안을 논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밝혔다. 회의에서는 현 한반도 주변 정세와 일련의 국제 문제들에 대한 분석 보고를 청취하고 금후 대미 대응 방향을 토의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김정은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제8기 제6차 정치국 회의를 열어 미국 대응방안을 논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밝혔다. 회의에서는 현 한반도 주변 정세와 일련의 국제 문제들에 대한 분석 보고를 청취하고 금후 대미 대응 방향을 토의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명단에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 관련자들을 추가하려던 미국의 시도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북한이 전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유예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대북 정책 입장차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AFP통신은 중국과 러시아가 20일(현지시간) 북한의 미사일 개발 관련자들을 안보리 제재 대상에 추가하려는 미국 측 제안에 대해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채택 보류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12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해 러시아와 중국에서 활동 중인 북한 국적자 6명과 러시아 국적자 1명, 러시아 기업 1곳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해 미국이 단행한 첫 번째 독자 제재였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미국은 2021년 9월 이후 6차례의 유엔 안보리 결의를 거스르는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에 따른 안보리 제재를 제안한다”면서 재무부 제재 명단에 오른 인사 가운데 북한 국방과학원 소속 5명을 유엔 제재 명단에 올릴 것을 제안했다. 미국의 독자 제재를 넘어 유엔 차원에서 이들에 대해 자산동결 및 여행금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보류 카드로 미국의 시도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의 추가 제재안은 이날 오후 3시까지 안보리 상임·비상인 15개 이사국의 반대가 없으면 자동 확정될 예정이었다. 중국은 마감 시간 직전에 검토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보류를 요청했고, 이어 러시아도 보류 요청을 했다.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상임·비상임 15개 이사국 만장일치로 의사를 결정한다. 15개국 가운데 1개국이라도 반대하면 기존 대북 제재 명단에 북한 핵·미사일 관련자들을 추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유엔 규정에 따르면 보류 요청이 들어오면 제재 명단 추가 안건은 6개월 간 보류된다. 이후 다른 이사국이 추가로 보류를 요청하면 3개월 연장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검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반대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안보리 대북 추가 제재 불발은 제재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근본적인 입장차를 보여준다. 미국은 북한과의 외교적 해법 모색을 강조하면서도 대화에 나서지 않는 북한, 특히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며 도발을 감행하는 북한에 대해서는 채찍인 제재를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화 유도를 위해 제재를 선제적으로 완화할 생각도 없다. 반면 중국은 대화 재개를 위해 미국이 제재 일부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최근 북한의 연쇄 미사일 시험에도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 및 규탄 대열에 선을 그으며 자제와 대화를 촉구해왔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유예를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하자 “덮어놓고 제재와 압력을 가하는 것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거듭 증명됐다”고 문제의 원인을 제재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자오 대변인은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러 양국의 보류 의견으로 인해 안보리 대북 제재가 무산된 데 대한 견해를 묻는 말에 “안보리 구성원들이 대국적 견지에서 장기적으로 내다보며 현재 정세를 신중하게 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데 초점을 맞춰 중국 측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정세를 안정화하기 위해 상호 신뢰를 쌓고 대화를 재개하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를 바란다”고 부연했다. 중국 측 제안이란 ‘쌍궤병진(雙軌竝進·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의 병행 추진)’ 등 원칙에 입각한 대북 대화를 추진하자는 것과 북한이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고 있는데 상응해 안보리 대북 제재를 완화할 것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류샤오밍(劉曉明) 중국 정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전날 노규덕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통화에서 “미국은 ‘제재 만능론’을 포기하고 실질적 조치를 내놓음으로써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우려를 해결하고 대북 안보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 대사는 그러면서 미국은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프로세스의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모든 이해당사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제반 문제의 전적으로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을 일관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러시아와 중국은 양자 및 6자 프로세스의 틀 내에서 정치적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안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토머스-그린필드 미국 대사는 안보리 비공개회의 직전 발표한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8개국 유엔대사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규탄하는 데 모든 이사국이 단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공동성명을 대표로 낭독하면서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는 선제적으로 안보리 대북제재의 이행을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여기에는 지난 주 미국이 제안한 불법 무기개발 관여자 등에 대한 제재 지정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안보리는 북한이 새해 들어 4차례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지난 10일과 17일에 이어 이날 세 번째로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앞선 2차례의 비공개 회의에서 안보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언론 성명을 채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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