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 푸틴이 감당하기 힘든 금융제재·수출 규제에 합의 근접"

정원식 기자
지난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주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순찰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주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순찰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과 유럽의 대러시아 제재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제재를 포함해 과거 러시아가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의 제재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경제 제재에 대한 러시아의 내성도 과거보다 강해져 제재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푸틴 대통령을 직접 제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공동취재단으로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푸틴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그렇다. 그걸 보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푸틴 대통령 개인을 제재 명단에 올릴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날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시 러시아 은행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금융 제재 방안에 대해 의견의 접근을 이루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행정부 당국자들은 금융 제재와 관련해 미국과 EU 간에 “아주 고무적인 의견 수렴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 EU 당국자는 러시아의 침공 규모와 성격 등 “제재를 발동하기 위한 방아쇠(조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추가적인 물밑 협상을 남겨 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베르방크, VTB, 가즈프롬방크, VEB, 로셀코즈방크 등 러시아 5대 국영은행이 우선적인 금융 제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5개 은행은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의 산업분야별 제재 리스트(SSI)에 올라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차단하는 방안에 관해 미국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화웨이에 적용했던 것과 유사한 수출 규제를 가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시 인공지능, 양자 컴퓨터, 우주항공 등 러시아의 핵심 산업 분야에 대한 수출 규제를 부과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수출 규제에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이 적용될 전망이다. 이럴 경우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이용해 생산한 제품의 수출을 금지할 수 있다. 제3국에서 미국산 반도체를 이용해 생산한 휴대전화의 러시아 수출을 금지할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특정 기업이 아니라 특정 국가를 상대로 이 규칙을 적용하는 것은 새로운 전략”이라면서 “미국산 반도체 제조 소프트웨어와 기술의 글로벌 시장 장악력을 고려할 때 광범위한 파급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화웨이는 지난해 해외직접생산품규칙에 따른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매출이 20% 급감했다. 유럽 국가들도 하이테크 제품 등의 러시아 수출 규제를 검토 중이다.

미국과 유럽이 금융 제재와 수출금지 조치를 통해 노리는 것은 러시아 산업과 자본시장을 뒤흔들어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에 타격을 주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아무리 깡패 같고 독재적인 지도자라도 대중적 인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면서 “10% 수준의 물가상승과 경기침체는 인기에 도움이 안 된다. 푸틴 대통령이 경제적 고통을 다른 나라 지도자들보다 잘 참는다 하더라도 그가 생각을 바꾸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수준의 고통이 있다”고 말했다.

서방 국가들의 제재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서방 국가의 제재에 대응하는 러시아의 능력은 2018년 트럼프 정부의 제재로 경제가 추락한 이란 같은 나라보다 훨씬 강하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중앙은행 지급준비금은 2015년 말보다 70% 이상 급증해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6300억달러(754조원)에 이른다.

유럽 국가들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것도 걸림돌이다. 1970년대부터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하기 시작한 유럽은 가스 수요의 약 40%를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다. EU의 중심축인 독일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는 50% 이상이다. 러시아가 중국과 정치적·경제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서방 국가들의 제재 효과를 약화할 수 있다.

니콜라이 주라블레프 러시아 상원 부의장은 이날 타스통신과 인터뷰에서 “국제결제망에서 차단될 경우 러시아는 외국 통화에 접근할 수 없겠지만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광물, 기타 주요 수입품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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