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컵처럼 쓰고 버린다"...러시아 피겨신동 '도핑 논란'으로 드러난 아동학대읽음

김혜리 기자

‘16세 발리예바’ 도핑 약물 검출에

 전세계서 “어른들에 책임 물어야”

 지옥 훈련 악명 ‘투트베리제 감독’

 기술에 유리한 어린 선수만 육성

 2차 성징 시작되면 줄줄이 은퇴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카밀라 발리예바가 11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수도실내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TASS연합뉴스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카밀라 발리예바가 11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수도실내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TASS연합뉴스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피겨스케이팅 신동 카밀라 발리예바(16)의 도핑 논란으로 러시아가 전 세계의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정부 차원에서 주도한 도핑 문제가 발각된 후 8년 만에 또 도핑·아동학대 의혹 등 유사한 문제가 다시 불거졌기 때문이다.

발리예바는 지난 7일(현지시간)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 단체전 여자 싱글 프리 경기에서 쿼드러플(4회전) 점프에 성공했다. 피겨 여자 싱글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서 쿼드 점프를 성공한 무대였으나 공식 기록으로 남을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지난해 12월25일 열린 러시아선수권대회에서 수집한 발리예바의 샘플에서 불법 약물인 트리메타지딘(TMZ)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TMZ는 협심증 및 기타 심장 관련 질환 치료제로, 지구력 증진에 도움을 주는 흥분제로도 사용될 수 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지난 2014년 이를 도핑 금지 약물로 지정했다.

발리예바의 도핑 의혹이 제기된 후 많은 이들은 그의 주변환경에 주목했다. 미성년자인 그가 이런 상황에 내몰릴 때까지 손을 놓고 있던 코치나 의료진 등 관계자들에게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긴 것이다. 육상 선수 출신인 도리앤 콜먼 듀크대 로스쿨 교수는 “이 상황 자체가 아주 폭력적으로 느껴진다”면서 “15살짜리 아이가 밖에 나가서 그냥 불법 약물을 발견할 리가 없다. 아마도 이 뒤에는 시스템이 있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1984 사라예보, 1988 캘거리 올림픽에서 2회 연속 피겨 여자 싱글을 제패한 카타리나 비트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어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 단체전 동메달리스트인 애덤 리펀도 소셜미디어에 “발리예바는 미성년자인데 주변 어른들이 그를 망쳤다. 그를 이런 끔찍한 상황에 놓이도록 한 이들은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이에 동조했다.

발리예바가 아테리 투트베리제의 제자라는 점도 동정론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2020년 최우수 지도자로 선정한 투트베리제 감독은 소녀들이 성과를 낼 때까지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다. 다른 감독들이 “아이들을 일회용 컵처럼 쓰고 버린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의 제자들은 어린 나이에 높은 성과를 낸 뒤 선수 생활을 단기간에 정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챔피언인 알리나 자기토바는 지난 2019년 17세의 나이에 활동을 중단할 것이라 밝혔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은메달리스트인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는 지난해 사실상 은퇴를 선언했다.

투트베리제의 손을 거쳐 간 신동들이 금세 다른 신동들로 교체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2차 성징이 시작되지 않은 작고 날렵한 아이일수록 빙판 위에서 수차례 회전하는 기술을 성공시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키가 커지고 몸무게가 느는 것은 자연스러운 신체적 변화인데도 10대 후반에 불과한 선수들은 더 어린 후배들에게 밀려날 것을 걱정하며 스스로를 탓한다. 15세의 나이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단체전에서 여자 싱글 1위를 차지하며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율리야 리프니츠카야는 거식증에 시달리다 결국 조기 은퇴를 선택했다. 그는 은퇴하기 전 “내가 평생 37kg으로 살아야 당신들은 행복하겠냐”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일각에선 투트베리제 뿐 아니라 피겨 내 문화가 아동학대에 취약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동 인권 활동가로 변신한 핀란드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키이라 코르피는 지난해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훈련받을 당시) 생리를 하지 않으면 좋은 것이라 배웠다. 아무도 내게 호르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몸에 어떤 증상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투트베리제의 어린이 공장이 아니라 병든 피겨 문화 그 자체가 문제”라며 아이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병들 수밖에 없는 훈련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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