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에 전 세계적 식량위기 임박읽음

박은하 기자
미국 워싱턴의 한 빵가게에서 직원이 빵을 진열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의 한 빵가게에서 직원이 빵을 진열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 세계적 식량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 세계 밀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흑해 지역이 전쟁터가 되면서 수확량 감소와 공급망 단절 등으로 세계 곡물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 곡물수입을 의존하던 이집트와 예멘 등 국가에서는 과거 ‘아랍의 봄’처럼 식량위기로 인한 정치적 격변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밀 가격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CBOE)에서 1부셸(27kg)당 밀 가격은 전날 대비 7.1% 상승한 11.34달러를 기록했다.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밀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예고되던 지난달에도 50% 상승했다.

쌀 선물 가격은 100파운드당 16.89달러(약 2만원)로 4.2% 올랐다. 이는 2020년 5월 이후 최고가다. 쌀이 밀의 대체재가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가격이 오른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흑해 연안 지역은 세계적인 곡물 생산지이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에 따르면 두 나라는 세계 상위 5대 곡물 수출국으로, 세계 총 칼로리의 약 12%가 이들 지역에서 나온다. 2018~2020년 기준 전 세계의 밀의 3분의 1이상(34%), 보리의 4분의 1이상(26.8%), 옥수수의 5분의 1 가량(17.4%)을 이 지역에서 생산했다. 해바라기씨유는 우크라이나가 전 세계 생산의 절반 가량(49.6%)을 공급한다. 생산된 곡물은 흑해를 거쳐 전 세계로 수출된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곡물 운송은 일체 중단됐다. 마리우폴과 오데사 등 우크라이나의 주요 항구도시가 러시아군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

블룸버그는 “코로나19 등으로 세계 식량 비축량이 이미 빠듯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침공과 미국과 유럽의 전면 제재는 세계 식량 공급망을 뒤집어 놓았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전 세계적 식량위기 임박

농민들이 전쟁터로 나가면서 밀 파종 시기도 놓쳤다. 우크라이나에 농장을 보유한 네덜란드 국적의 곡물 재배업자 키스 하위징아는 “예전대로라면 지금은 파종을 해야 하는 시기다. 농장직원 400명 가운데 일부는 전쟁터에 나갔고 일부는 키이우(키예프)의 대피소에서 구호물자를 전달하고 있다”면서 “파종시기는 이미 놓쳤다. 내일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올 여름 수확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전쟁 여파로 다른 지역 농업 생산도 큰 피해를 볼 전망이다. 가장 큰 문제는 비료 부족이다. 노르웨이 비료 제조사 야라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유럽에 공급되는 질소, 인, 칼륨의 25%가 러시아에서 나온다. 질소 비료의 가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전주보다 29% 급등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비료대란이 발생해 아이오와주 법무당국이 매점매석 등 비료 불공정거래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상황이다. 야라 인터내셔널은 최근 성명을 내고 “비료의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고 생산량을 확보하지 않으면 특권층만 충분한 식량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지역의 올해 식량 생산 사정도 녹록지 않다. 캐나다와 미국 중서부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캐나다 기상당국에 따르면 가뭄으로 지난해 서부 캐나다 곡물 생산량의 40%가 감소했다. 호주는 홍수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 1월 전 세계 평균 식량 인플레이션이 7.8%를 기록했으며 이는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침공 이전에도 미국 농무부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 쇠고기 도매 가격은 2022년에 최대 7.5%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터키는 저금리를 유지하는 통화정책의 여파까지 겹쳐 지난 1년 사이 물가가 49% 올랐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차질로 이미 식량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파급이 더해지면서 전 세계가 파괴적 식량위기에 임박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농업경제학자인 스콧 어윈 일리노이대학 교수는 “당장 방법이 없다”며 “내 생애 내에서는 최악의 세계곡물시장 공급충격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식량계획의 아리프 후세인 수석 경제학자도 “지나치고 불필요한 충격”이라고 밝혔다.

터키, 이집트 등 우크라이나 곡물 의존도가 높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이집트는 2020년 기준 식량의 86%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했다. 예멘의 식량구호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밀의 절반은 우크라이나산이다. 빈곤국에 분배할 곡물과 식량을 조달하는 WFP는 지난해 140만톤의 밀을 구입했으며 그 중 70%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나왔다.

이들 지역에서는 식량위기가 정치적 불안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09년 곡물가격 급등은 2010년 튀니지, 이집트 등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아랍의 봄)의 방아쇠를 당겼다. 2007~2008년 호주의 흉작으로 세계 밀 가격이 급등했을 때 코트디부아르 등 40개국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IFPRI는 “각국이 자국 식량안보 확보에 나서는 상황은 ‘근린궁핍화’로 이어져 취약한 국가에 해로운 결과를 끼칠 수 있다”며 “취약국의 상황까지 고려하는 식량확보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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