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화염병을 들었지만 우크라이나는 '투사', 팔레스타인은 '테러리스트'

김혜리 기자

우크라·팔레스타인 전쟁과

서구 사회의 이중잣대 비판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7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라파 난민캠프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 UPI연합뉴스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7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라파 난민캠프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 UPI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는 데는 단 5일밖에 안 걸렸다. 하지만 70년간 팔레스타인을 억압해온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엔 왜 동의하지 못하는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팔레스타인 전쟁에 대한 미국과 서구 사회의 이중잣대가 비판을 받고 있다.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엔 각종 경제제재를 가하고 전쟁범죄 조사에 나서는 등 러시아 규탄에 하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와 연대하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수십년간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아온 팔레스타인에 대한 서방의 지지는 미비했다고 인권단체들은 지적한다.

세계 최대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지난달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펼쳤다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열등한 비유대인종으로 취급하며,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이들의 땅과 재산을 압류하고 이동을 제한하는 등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국제앰네스티는 해당 보고서에서 인종차별정책에 연루된 이스라엘 관리들의 재산을 동결하는 등 표적 제재를 가할 것을 촉구했다. 팔레스타인 관리들과 유엔 특별보고관들 역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점령, 가자지구 봉쇄, 민간인 대량학살 등을 규탄하며 이에 대한 제재를 요구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 EPA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 EPA연합뉴스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유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1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수백명을 죽이고 있다”면서 인권을 짓밟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단호한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이러한 인권유린 행태가 더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인권이사회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그는 같은 연설에서 유엔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이스라엘의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것은 “인권이사회 신뢰도에 오점을 남기는 것”이라며 조사 중단을 촉구했다.

이에 사라 레아 휘트슨 전 휴먼라이츠워치(HRW) 중동지역 본부장은 러시아와 이스라엘은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등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유사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정부와 기업들은 러시아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재를 가하고 보이콧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국제법을 위반한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이스라엘을 보이콧하는 기업이나 개인들을 처벌하고 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HRW에 따르면 미국 50개 주 가운데 27개 주가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을 요구하거나 시행하는 기업, 단체 또는 개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법을 채택했다.

유럽·캐나다 등 다른 서방 국가들도 전쟁에 차별을 두는 위선적인 태도로 비판을 받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러시아 규탄 여론을 주도한 대표적 국가들이다. 하지만 양국은 지난해 팔레스타인이 주권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ICC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조사를 일부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줄리 엘리엇 영국 노동당 의원은 의회에서 “우리는 크림반도 합병으로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고 이제는 더 많은 제재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우리가 왜 이스라엘의 점령을 끝내기 위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지 묻는다”면서 전쟁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지적했다.

스포츠계도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지난 2016년 챔피언스리그 예선 경기에서 셀틱 팬들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든 것을 두고 부적절하다며 벌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러시아가 비난을 받자 향후 대회에서 러시아를 퇴출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지난 2009년 ‘팔레스타인’이라 적힌 티셔츠를 노출한 프레데릭 카누테에게 벌금을 물리는 등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FIFA는 지난 1일 UEFA와 함께 러시아의 모든 국제 대회 출전을 금지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갑자기 정치 개입에 유해진 스포츠계 내 분위기를 지적하고 나섰다. 터키 축구선수 아이쿠트 데미르는 지난달 27일 경기에서 ‘NO WAR(전쟁 반대)’라고 적힌 티셔츠 착용을 거부했다. 그는 “매일 중동에서는 수천명이 분쟁으로 사망한다”면서 “이 티셔츠는 중동 등 제3세계를 아우르지 못하는 서방의 편향을 드러내기에 입지 않겠다”고 밝혔다.

터키 축구선수 아이쿠트 데미르는 지난달 27일 열린 경기에서 ‘No war(전쟁 반대)’라 적힌 티셔츠가 “중동 등 제3세계를 아우르지 못하는 서방의 편향을 드러낸다”며 착용을 거부했다. | 트위터 갈무리

터키 축구선수 아이쿠트 데미르는 지난달 27일 열린 경기에서 ‘No war(전쟁 반대)’라 적힌 티셔츠가 “중동 등 제3세계를 아우르지 못하는 서방의 편향을 드러낸다”며 착용을 거부했다. |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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