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크라이나 비행금지구역 설정 못하는 이유는?

박은하 기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서방을 향해 연일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선포해 러시아 전투기의 진입을 막아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선을 긋고 있다. 서방이 참전을 꺼리면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민간인 학살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서방 입장에서는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을 각오하기 전에는 이 카드를 뽑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등이 비행금지구역 선포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와의 충돌과 확전 우려때문이다. 리처드 베츠 콜롬비아대 교수는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자는 아이디어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무언가를 하자’는 인도적 충동을 반영하지만 훨씬 더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베츠 교수는 비행금지구역을 선포한다는 것은 “러시아군의 공습을 막기 위해 일상적으로 정보를 수입하고 수많은 전투기가 순찰하며 무엇보다 금지구역을 진입한 적기를 격추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나토 전투기와 러시아 전투기 간의 공중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요구를 들어주면 나토와 러시아 간 직접 전쟁이 벌어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며 “푸틴은 비행금지구역 선포를 러시아에 대한 나토의 최후통첩이라고 보고 후퇴처럼 보일 수 있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분쟁지역 비행금지구역 선포는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 우위가 보장될 때만 가능하다. 베츠 교수는 “비극은 가슴아픈 일이지만 뒤늦은 참전이 더 큰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며 나토의 도움은 난민수용, 무기·탄약·식량 지원을 포함해 전세를 확전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때문에 나온 것이 제한적 비행금지구역 선포 아이디어다. 미국의 전 국방·국무부 고위 관리들과 나토 군 사령관을 포함한 외교·안보 전문가 27명은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정부에 우크라이나 상공에 대한 전면 비행금지구역 요구를 거부하되 제한된 구역 내에서의 비행금지 지정은 수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보냈다.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 통로’ 상공 등에 제한적으로 비행금지구역을 선포하자는 내용이다.

서명에 참여한 에블린 파커스 전 미국 국방부 러시아·우크라이나 및 유라시아 차관보는 1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미국을 통한 폴란드 전투기 지원이 무산된 일을 언급하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죽이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제한을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도록 내버려두면 러시아는 몰도바나 조지아 처럼 동맹에 속하지 않은 국가들을 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한적 비행금지구역 설정 역시 러시아와의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로버트 팔리 켄터키대 교수는 온라인 매체 복스에서 “제한적 금지구역 설정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거나 또는 잘란 척 하려는 것 두 가지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복스는 “제한된 비행금지구역 적용도 러시아 항공기 및 방공망과의 충돌을 거의 확실하게 보장하며 핵 보유국 간의 충돌로 이끌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임스 액턴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을 포함한 외교안보전문가 78명이 “미국은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며 정부에 제한적 비행금지구역 적용을 거부하라는 서한을 보낸 것도 이때문이다. 러시아의 민간인 지역 공격이 비행기를 이용한 폭격이 아니라 대부분 포격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민간인 대피로 확보를 위한 제한적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반박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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