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바스 결전’ 시작...새 국면 진입한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전으로 가나

정원식 기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18일(현지시간) 영상연설을 통해 ‘돈바스 전투’가 시작됐음을 알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18일(현지시간) 영상연설을 통해 ‘돈바스 전투’가 시작됐음을 알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가 예상대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대규모 공세를 시작하면서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양측이 동부 지역에 화력을 집중시키면서 전쟁이 장기전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영상연설에서 “우리는 지금 러시아군이 오랫동안 준비한 돈바스 전투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러시아군 전력 중 상당 부분이 이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지난달 25일 우크라이나에서의 ‘1단계 작전’을 마무리하고 “돈바스 지역의 완전한 해방에 주력하겠다”고 선언한 지 24일 만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아무리 많이 들이닥치더라도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킬 것”이라면서 “우리는 싸울 것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드리 예르마크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쟁의 두번째 국면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한 고위 군 당국자는 뉴욕타임스에 “전반적인 그림으로 볼 때 돈바스 공세는 시작됐고 향후 며칠 안으로 활성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9일 “군사 작전의 새 국면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돈바스는 러시아 서쪽 국경과 맞닿아 있는 지역으로 철광석과 석탄 등 지하자원이 풍부해 옛 소련 시절부터 우크라이나의 공업 중심지였다. 2014년 이후에는 이 지역의 친러 반군 세력이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에 각각 공화국을 설립해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충돌해왔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480㎞ 전선에서 지상 공격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들은 전선을 따라 강력한 폭발음이 보고됐고 마린카, 슬랴반스크, 크라마토르스크 등이 포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방안보위원회 서기는 “도네츠크, 루한스크, 하르키우 등 거의 모든 전선에서 러시아군이 우리 방어망을 뚫기 위한 시도를 했다”면서 “다행히 우리 군은 잘 버티고 있다. 크레미나시와 또 다른 작은 마을 등 단 두 곳만 잃었다”고 밝혔다. 파블로 키릴렌코 도네츠크 주지사는 이날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남부 자포리자 지역에서도 공격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군은 동부 지역 대공세에 앞서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 피란민들이 몰려있는 서부 도시 르비우에서는 이날 군사시설 세 곳과 호텔 등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최소 7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러시아는 이날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동부와 중부 탄약고, 지휘본부, 군부대, 군장비 등을 타격했고 수백개의 목표물에 포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군과 군장비에 대해 108 차례의 공습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은 돈바스 대공세를 앞두고 병력을 대폭 늘렸다. AP통신에 따르면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 주둔한 러시아 대대전술단(BTG)이 65개에서 최근 며칠 사이에 76개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1개 BTG를 700~800명으로 보는 미 국방부 계산에 따르면 이 지역의 러시아군은 5만~6만명 규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도 이에 맞서 병력을 증강해 약 3~4만명을 이 지역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돈바스 결전’은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그동안 전쟁은 키이우 일대 등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심에서 시가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군은 병력과 장비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지형지물을 활용해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전투로 러시아군의 진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평지가 대부분인 돈바스는 원거리에서 강력한 포격을 퍼부어 기선을 제압한 뒤 기갑부대를 투입해 상대방을 포위해 제압하는 화력전에 적합한 지형이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개전 초기 러시아를 괴롭힌 보급 문제도 해결되고 러시아 공군의 지원을 받기에도 용이하다.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1일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 남부군관구 사령관을 야전사령관으로 임명함에 따라 지휘 체계도 단일화됐다.

우크라이나군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타임스는 지형적으로는 러시아에 유리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평지를 거쳐 진격해오는 러시아군이 사정권에 들어올 때까지 참호에서 기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4년 이후 8년간 이 지역에서 친러 세력 및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이면서 경험을 쌓았다는 것도 강점이다. 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우크라이나는 돈바스 전투에 대비해 사거리가 긴 야포와 다연장 로켓, 항공기, 지대공 미사일, 탱크 등이 필요하다며 서방의 지원을 요청해왔다. 슬로바키아는 지난주 S-300 방공미사일 시스템을 우크라이나에 전달했다. AFP통신은 이날 미국이 지원한 155mm 호위처 곡사포, 수송헬기, 장갑차 등이 우크라이나에 도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 역시 대포와 장갑차, 탱크 등 공격용 중화기 지원을 논의 중이다. 독일은 탱크, 장갑차, 자주포 지원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이다.

푸틴 대통령은 2차 대전 승전 기념일인 5월9일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를 선언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일부 외신들은 전했다. 하지만 양측이 가용 자원과 화력을 모두 쏟아붓는 만큼 전쟁이 장기전 양상으로 흐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돈바스 전선은 느리고 추악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최근 유럽 동맹국에 “올해 말까지 전쟁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CNN은 전했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무기지원으로 러시아의 공격을 버티면서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전선이 우크라이나 너머로 확전되거나 핵전쟁 위협이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러시아는 지난달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지원은 합법적 공격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AP통신은 러시아 관영매체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직접 개입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7일 공개된 CNN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핵 또는 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과 관련해 “나뿐만이 아니라 세계 모두, 모든 나라가 우려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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