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 홀로코스트 생존자 마리우폴의 차가운 지하실에서 숨져

박은하 기자
출처: chabad.org

출처: chabad.org

나치 독일 점령기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지하실에 숨어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91세 유대인 여성이 러시아군의 포격을 피해 지하실에서 버티다가 추위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숨졌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반다 오비에드코바(91·사진)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마리우폴의 차가운 지하실에서 대피생활을 하다가 지난 4일(현지시간) 사망했다. 유대교 매체 카바드(Chabad.org)는 오비에드코바와 함께 숨어지내온 딸 라리사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다. 라리사는 어머니가 꽁꽁 얼어붙은 몸으로 물을 달라고 애원하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만은 알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오비에드코바는 1930년 12월 마리우폴에서 태어났다. 모계가 유대인이었다. 10살 때인 1941년 10월 나치 독일이 구소련 연방이던 우크라이나의 마리우폴에 입성했다. 나치 친위대가 집에 들이닥쳐 오비에드코바의 어머니와 외가 친척들을 끌고 가 시 외곽 개천에서 처형했다. 마리우폴의 유대인 9000~1만6000명 가량이 이때 처형된 것으로 추산된다. 오비에드코바는 지하실에서 숨어 있어 끌려가지 않았다.

오비에드코바는 나중에 나치 친위대에 체포됐지만 가족들이 그리스인이라고 둘러대 빠져나왔다. 그는 1943년 마리우폴이 해방될 때까지 병원에서 지냈다. 이후에도 줄곧 마리우폴에서 살았다. 라리사는 “어머니는 마리우폴을 사랑했다. 결코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오비에드코바는 1998년 홀로코스트 연구단체에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는데 이번 전쟁으로 집이 불타면서 증언비디오도 사라졌다.

지난 3월 초 마리우폴에 러시아군의 미사일과 대포 공격이 시작되자 오비에드코바와 가족들은 인근 가게의 지하실에서 지냈다. 라리사는 “물도 전기도 난방도 없었고 극도로 추웠지만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짐승처럼 살았다”고 말했다.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는 데다 상수원 근처에는 러시아군 저격수들이 배치돼 있어 밖으로 다니는 일이 극도로 위험해졌다. 마리우폴의 산부인과 병동이나 피란민들의 대피소로 쓰였던 극장이 포격을 당해 파괴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라리사는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어머니는 ‘대조국전쟁(2차 세계대전) 때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고 끊임없이 말했다”고 전했다. 마리우폴에서 활동하던 랍비 멘델 코헨은 “반다는 상상할 수 없는 공포를 겪었다”고 말했다.

오비에드코바는 러시아 침공 이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두번째 우크라이나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다. 첫번째는 유대인 강제수용소 생활도 했던 하르키우 주민 보리스 로만셴코(96)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3월 자신이 살던 아파트가 폭격당해 숨졌다고 친척들이 증언했다.

우크라이나의 노인들이 전쟁의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전쟁 초기부터 나왔다. 현지 자선단체들에 따르면 많은 노인들이 몸이 불편해 피란길에 오르지 못하고 지하실 생활을 하거나 고립돼 있다. 부차 등에서도 거동이 불편해 피란길에 오르지 못한 노인들과 이들을 돌보기 위해 남은 사람들이 학살의 대상에 많이 포함됐다. 글로벌 통계사이트 스테티스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인구의 약 4분의 1 가량이 60세 이상이다.

크름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잇는 남부 요충지 마리우폴은 현재 도시 대부분이 러시아군에 장악된 상태다. AP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제외한 마리우폴의 나머지 지역은 해방됐다”고 보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마리우폴 해방작전이 성공적으로 종료됐다”며 우크라이나군 2000여명이 남아 끝까지 저항하고 있는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공격하는 대신 “파리 한 마리도 통과하지 못하도록 봉쇄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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