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펄로 총격 사건 배후 지목된 '거대 대체 이론'…백인 우월주의 기반 '행동' 강조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미국의  한 시민이 15일(현지시간) 무차별 총기 난사로 10명이 목숨을 잃은 뉴욕주 버펄로 슈퍼마켓 사건 현장에서 조화와 촛불을 바라보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버펄로|AP연합뉴스

미국의 한 시민이 15일(현지시간) 무차별 총기 난사로 10명이 목숨을 잃은 뉴욕주 버펄로 슈퍼마켓 사건 현장에서 조화와 촛불을 바라보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버펄로|AP연합뉴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버펄로의 슈퍼마켓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해 10명을 숨지게 한 페이튼 젠드런(18)의 범행 동기가 인종주의였다는 것이 확실시되면서 ‘거대 대체 이론(Great Replacement)’이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비백인 이민자들로 백인 중심의 유럽 인구와 문화를 대체하려는 거대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이론은 최근 몇 년 사이 벌어진 대형 인종주의 테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배후로 지목됐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젠드런이 인터넷에 올린 180쪽 분량의 선언문 등을 보면 거대 대체 이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시 된다고 15일 보도했다. 이 용어는 프랑스 논객 르노 카뮈가 2011년 쓴 책의 제목에서 따왔다. 카뮈는 글로벌 엘리트 집단이 북아프리카와 중동 출신 이민자들을 대규모로 받아들여 프랑스 그리고 백인 중심 유럽 인구와 문화를 대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황인종이 서구 백인 사회를 위협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른바 ‘황화론’이 유행하는 등 비백인 인종을 배척하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에서 우월한 문명을 창조한 유럽계 백인들이 아프리카 흑인 노예의 후손과 섞여 잡종이 늘면서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던 미시시피주 주지사 및 상원의원을 지낸 시어도어 G 빌보(1877~1947)를 조명하기도 했다.

특히 카뮈는 일본이 중국의 문화로 대체되어선 안되는 것처럼 백인의 역사와 문화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선 안된다는 논지를 펼침으로써 백인들이 인종주의에 대한 거부감 없이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2017년 8월 백인 우월주의자, 네오 나치, 인종주의자 등이 일으킨 폭동 사태에 등장했던 구호 중 하나도 ‘당신들은 우리를 대체할 수 없다’였다.

젠드런은 선언문에서 미국의 백인 문화가 절멸 위기에 빠졌다는 불안감을 드러내면서 유색인종은 미국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진보세력이 교육을 통해 백인 어린이들이 스스로를 미워하게 만든다는 주장도 했다. 이런 논지는 젠드런이 큰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한 2019년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해 51명의 목숨을 잃게 만든 브렌튼 태런트가 범행 전 인터넷에 올린 선언문과 겹친다. 스웨덴 소재 싱크탱크 칼리파 일러 연구소는 젠드런의 선언문은 태런트의 선언문을 28% 표절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2019년 8월 미국 텍사스주의 국경 도시 엘패소의 월마트에서 무차별 총격으로 20명을 죽게 한 패트릭 크루시어스 역시 히스패닉이 텍사스의 지방과 주 정부를 장악할 것이라면서 인종이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선언문을 남겼다. 젠드런은 선언문에서 2011년 노르웨이 우퇴위아섬에서 77명을 살해한 전투적 극우주의와 반다문화주의 성향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도 언급했다.

문제는 거대 대체 이론에 기반한 주장이 극단적인 테러리스트뿐 아니라 주류 정치인과 언론 매체에서도 공공연하게 언급된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중도 우파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발레리 페크레스는 지난 2월 지지자 집회에서 프랑스가 ‘거대한 대체’를 당할 운명이 아니라며 모두 들고 일어나 맞서자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 공화당 스콧 페리 하원의원은 지난해 4월 하원 외교위 소위 청문회에서 “많은 미국인들은 우리가 미국 태생 미국인들을 대체함으로써 이 나라의 정치 지형이 영구적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폭스 뉴스의 간판 앵커로 극우 음모론들을 즐겨 인용하는 터커 칼슨은 거대 대체 이론에 대한 진보 진영과 기성 언론의 비판을 히스테리라고 공격하고 있다.

오슬로대의 심리학자 밀란 오바이디는 워싱턴포스트에 “이런 철학은 더이상 인터넷 주변부와 가장 극단적인 집단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이것은 주류가 되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의 저명한 정치인들이 비슷한 사상을 내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메리칸대학교의 극단주의 연구자 신시아 밀러-이드리스 역시 “여러 정치인과 칼슨 같은 케이블 뉴스 거물들에 의해 거대 대체 담론이 엄청나게 주류로 올라서고 있다”면서 이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위험한 극단주의 사상이 맹렬하게 전파되는 현상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더욱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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