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법, 정부 온실가스 배출규제권 축소...‘바이든표’ 탄소정책 타격 불가피읽음

김혜리 기자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 등 환경운동가들이 30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기후변화 대응책 축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 대법은 이날 연방정부 기관인 환경보호청(EPA)의 온실가스 감축 규제 권한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렸다. | AFP연합뉴스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 등 환경운동가들이 30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기후변화 대응책 축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 대법은 이날 연방정부 기관인 환경보호청(EPA)의 온실가스 감축 규제 권한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렸다. | AFP연합뉴스

최근 임신중단권 등 첨예한 사회적 이슈들에서 보수 성향 판결을 내놓고 있는 미 연방대법원이 30일(현지시간)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규제권에 제동을 걸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은 물론 국제 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이날 연방정부 기관인 환경보호청(EPA)이 미 전역의 석탄·화력발전소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앞서 웨스트버지니아 등 공화당 우세 주들이 EPA의 규제가 주 정부의 권한을 넘어선다며 제기한 소송에 6대 3의 다수 의견으로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미 대법은 이날 판결문에서 “의회가 EPA에 모든 발전소의 배출량을 제한할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면서 “EPA는 우선 입법부에서 그런 권한을 구체적으로 위임받아야 할 것”이라며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번 판결은 민주당 재집권으로 힘을 얻을 것으로 기대됐던 탈탄소 정책에 찬물을 끼얹었다. 앞서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2015년 미국 내 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32% 감축하겠다며 ‘청정전력계획(CPP·Clean Power Plan)’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EPA는 각 주마다 탄소배출 목표를 설정하며 미 전역 석탄 화력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각 주에 탄소배출 규제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는 ‘적정 청정에너지법(ACE법)’을 시행하면서 EPA에 주어진 권한을 철회했다.

이와 달리 지난해 초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기후변화 대응’을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기후 정책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방기한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재개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지난 4월 기후 정상회의에서는 “2030년 말까지 전국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절반으로 줄이고, 2035년까지 탄소 무공해 전력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국제 협력을 주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EPA의 권한을 축소하면서 ‘바이든표’ 탈탄소 정책엔 제동이 걸렸다. AP통신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발전소 가동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은 전체의 30%에 해당한다. EP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19개 주의 배출량은 이 중 44%를 차지한다. 환경단체들은 2000년 이래로 이 주들의 평균 감축량은 7%에 불과하다며 2035년까지 발전 부문에서의 탄소 중립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 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대법원 판결은 미국의 탄소배출량 감축을 지연시키고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약화시켜 국제적인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테판 뒤자릭 유엔 대변인은 “(대법원 결정은) 기후변화 대응에서의 후퇴”라면서 “미국이나 다른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들의 이 같은 결정은 건강하고 살기 좋은 지구를 위한 파리 기후변화협약의 목표 충족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판결로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차질을 빚는 정도를 넘어 기업에 대한 행정부의 규제가 약해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 사회는 그동안 연방정부 기관이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통해 식품, 의약품, 자동차, 소비재, 공기와 물 등의 안전을 보장해왔는데, 대법원이 이 같은 연방정부 기관의 권한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EPA에서 근무했던 리사 하인젤링 조지타운대 법학과 교수는 “새로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의회에서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는 말도 안 되며 위험한 일”이라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대법원 판결은 수십년간 경제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축소하거나 해체하기 위해 작업해온 자유지상주의 보수파들에게 커다란 승리”라고 지적했다.

이날 판결은 연방대법원의 회기가 종료되는 날 나왔다. 보수우위 연방대법원은 이번 회기에서 공공장소에서의 총기 휴대 허용과 임신중단권 폐지 등 보수적 판결로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연방대법원이 최근 판결들을 통해 20세기의 진보적 유산과 결정적으로 결별했다면서 “야심적인 보수주의의 시대가 열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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