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기름값이 치솟으면서 각국 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고유가를 기회로 막대한 이윤을 챙긴 석유기업들에 ‘횡재세’를 부과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까지 횡재세 요구에 동참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글로벌위기대응그룹(GCRG) 보고서 발간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올해 1분기 기준으로 대형 에너지 회사들의 합산 이익이 1000억달러(약 130조8200억원)에 육박한다며 횡재세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석유·가스 회사들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공동체들의 등 뒤에서 이번 에너지 위기로부터 기록적인 이익을 챙기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나라 정부에 이러한 초과 이익에 대해 세금을 매겨 그 재원을 어려운 시기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주요 석유기업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본격화하면서 역대 최대 이익을 올리고 있다. 세계 1∼5위 석유기업인 엑손모빌, 셰브런, 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토탈에너지는 지난 2분기에만 약 600억달러(약 78조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5개사 합산 분기 실적으로 역대 최고치다.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엑손모빌은 2분기에만 178억5000만달러(약 23조30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엑손모빌의 역대 최고 분기 순이익으로, 전년 동기 46억9000만달러(약 6조원) 대비 4배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2분기 매출은 1156억달러(약 151조1000억원)로 전년 동기 677억달러(약 89조원)의 약 두 배에 달한다.
셰브런도 2분기에 역대 최고인 116억2000만달러(약 15조2000억원)의 순이익과 650억 달러(약 85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유럽 최대 석유회사인 셸 역시 115억달러(약 15조원)의 역대 최대 순이익을 기록했고, 프랑스의 토탈에너지는 작년 동기에 3배에 육박하는 98억달러(약 12조8000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영국 BP는 올해 2분기 84억5000만달러(약 11조원)를 거두며 전년 동기(28억달러)의 3배가 넘는 순이익을 올렸다.
석유기업들은 코로나19 후폭풍으로 전 세계적 고물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난으로 유가가 급등하며 엄청난 반사이익을 챙겼다.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줄어들면서 2분기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 선물 평균 가격은 배럴당 109달러로 1년 전보다 64% 올랐다. 고유가로 세계 시민들의 허리가 휘는 상황에서도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석유기업들에 횡재세를 물려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석유기업들을 겨냥해 “이러한 괴물같은 탐욕은 우리의 유일한 집(지구)을 파괴하면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벌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횡재세는 기업이 비정상적으로 유리한 시장 요인으로 인해 부당하게 높은 수익을 올린 데 대해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고안됐다.
각국의 횡재세 도입 논의도 탄력을 받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5월 셸과 BP 등 고유가로 떼돈을 번 자국 석유업체와 가스업체에 대해 25%의 초과 이윤세를 부과하고 이를 통해 150억파운드(약 24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가계를 지원하기로 했다. 폭등한 물가 탓에 생활고를 겪는 약 1600만명의 저소득 계층을 지원하는 데 쓴다는 방침이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500만유로(약 67억원) 이상 이익을 낸 에너지 기업에 25%의 횡재세를 추가로 물리기로 했다.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도 조 바이든 정부의 주도로 횡재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이윤율이 10%를 넘어서는 석유회사에 추가로 21%의 세금을 물리는 징벌적 과세 법안을 발의해 추진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6월 엑손모빌을 비롯한 7대 대형 정유사에 서한을 보내 “전쟁이 한창인데 정상보다 높은 정유사 이윤이 미국 가정에 부담을 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3월에는 트위터에서 국제유가가 내렸음에도 휘발류 가격을 내리지 않고 있는 국내 석유기업에 대해 “열심히 일하는 미국인들을 희생시켜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서는 안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