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남아공 찾아 새 아프리카 전략 제시…미·아프리카 동등한 파트너십 강조하며 중·러 영향력 견제

박효재 기자
토니 블링턴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8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의 국제관계협력부에서 날레디 판도르 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나란히 회의장을 빠져 나오고 있다. 프레토리아|로이터연합뉴스

토니 블링턴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8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의 국제관계협력부에서 날레디 판도르 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나란히 회의장을 빠져 나오고 있다. 프레토리아|로이터연합뉴스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과 아프리카의 동등한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새 아프리카 전략을 제시했다. 미국 외교수장의 이번 아프리카 방문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블링컨 장관은 8일(현지시간) 아프리카 3개국 순방의 첫 방문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미국은 아프리카의 동등한 파트너로서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블링컨 장관은 프리토리아 대학에서 조 바이든 정부의 새 아프리카 전략을 주제로 연설하면서 “미국은 아프리카의 선택에 대해 지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전날 남아공에 도착해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반대 투쟁의 본거지인 소웨토를 방문했다.

블링컨 장관은 연설에서 코로나19 팬데믹 극복, 보건 안보, 기후 적응, 환경 보존을 바이든 정부 아프리카 전략의 4가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아프리카에서 최근 분쟁의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면서 지역 파트너들과 통치 안정 프로그램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말리와 기니, 부르키나파소에 이르기까지 최근 2년 새 잇따른 쿠데타로 서아프리카에 군부 장악 국가가 늘어난 데 대한 대응책을 내놓은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2019년 미 의회가 통과시킨 글로벌 취약성 법(GFA)에 따라 매년 2억달러를 세계 분쟁지역 통치 안정에 쓸 수 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 아프리카 지역 영향력 확대에 대한 경계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블링컨 장관은 팬데믹으로 황폐해진 아프리카의 경제가 “러시아의 정당한 이유 없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은행 추정치를 인용해 현재 1억9300만명인 세계 기아 인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4000만명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기아 인구 대부분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예상된다. 블링컨 장관의 발언은 앞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봉쇄로 중동·아프리카 저개발국을 중심으로 식량 위기가 심각해진 상황을 지적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국무부는 이날 블링컨 장관 연설에 앞서 공개한 새 아프리카 정책 문서를 통해 중국에 대한 경계심도 드러냈다. 이 문서는 “중국은 아프리카 지역을 규칙에 기반을 둔 세계 질서에 도전하는 장으로 보고 있으며 자신들의 협소한 상업적·지정학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아프리카 각국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흔드는 한편 미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관계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러시아는 아프리카를 군사 기업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종종 전략적·재정적 이익을 위해 역내 불안정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인권 유린에 대한 아프리카의 원칙적인 반대를 약화시키기 위해 허위 정보뿐만 아니라 안보와 경제적 유대관계를 이용한다”고 규정했다.

미국 측은 남아공에서 새 아프리카 전략을 발표한 이유에 대해서는 남아공이 아프리카 최대 민주주의 국가이고 미국의 주요 무역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블링컨 장관은 남아공에 이어 9일 콩고민주공화국, 10일 르완다를 방문한다.

블링컨 장관의 이번 아프리카 순방은 중국·러시아에 맞서 아프리카 국가들을 미국 측으로 더 가까이 끌어오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이는 지난달 말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아프리카를 방문한 지 10여 일 만에 아프리카를 찾은 데서 알 수 있다. 중국도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올해 첫 해외 순방지로 아프리카를 택하는 등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어 미국으로서는 견제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의 바람대로 아프리카 국가들을 미국 쪽으로 끌어당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은 이미 대규모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와 저금리 대출 등으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아프리카 최대 경제국인 나이지리아에서 대규모 철도·도로 건설 사업에 중국 자본이 투입됐으며, 대부분 중국 기업들이 건설까지 도맡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아프리카 밀 수요의 약 40%를 공급하고 있으며, 서구 식민지배 경험이 있는 아프리카 다수 국가들은 미국보다 러시아를 더 가까운 나라로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남아공을 비롯해 아프리카 54개국 중 상당수 국가는 미국 주도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남아공은 블링컨 장관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대한 비판을 거부했다. 날레디 판도르 남아공 국제관계협력장관은 블링컨 장관과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중국은 세계 최대 강대국이자 경제국”이라면서 “그들은 아프리카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가 우려하는 만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같이 유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 통치를 묵인하는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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