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우크라이나 점령지 병합 조약 서명…‘출구 전략’ 사실상 봉쇄

박용하 기자
러시아가 영토 병합을 선언한 우크라이나 영토

러시아가 영토 병합을 선언한 우크라이나 영토

러시아가 3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점령지역에 대한 병합 조약을 체결하고 러시아 연방 편입을 공식화했다. 병합 작업이 완료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출구 전략은 사실상 봉쇄될 수 있으며, 핵전쟁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자포리자주, 헤르손주 등 우크라이나 점령지 네 곳에 대한 병합 조약에 서명했다. 그는 서명에 앞선 연설에서 “해방된 영토의 주민들은 이제 영원히 러시아 시민이 될 것”이라며 “러시아는 이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힘과 수단으로 우리 땅을 방어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우크라이나를 향해서는 협상 테이블로 복귀할 것을 촉구했으나, 새로 병합한 지역 주민들의 선택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러시아 상원과 하원이 조약을 비준하고, 푸틴 대통령이 최종 서명하면 이들 지역의 편입 절차는 마무리된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름반도를 병합할 당시 현지 주민투표 이후 6일 만에 모든 절차를 마쳤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조약 체결에 앞서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를 독립 영토로 승인하는 법령에도 서명했다. 병합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분석된다. DPR과 LPR의 경우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인 지난 2월21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법령을 승인한 바 있다.

합병 지역에 대한 재건 계획도 마련했다. 러시아 정부가 공개한 예산안에는 지역 재건에 33억루블(약 822억원)이 배정돼 있었다. 앞서 서방에서는 DPR에 속해 있는 마리우폴시의 피해액만 140억달러(약 20조원) 가량으로 추산한 바 있다.

러시아의 점령지 병합은 이들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규정해 우크라이나의 반격과 서방의 지원에 부담을 주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동원령 선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조치로도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독립국가연합(CIS) 정보기관장들과 회의에서 “서방은 어느 나라에서든 색깔혁명(2000년대 발생한 각국의 민주화 운동)과 유혈사태를 일으킬 준비가 돼 있다”며 내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문제는 이번 조약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출구 전략이 더 멀어지게 된 점이다. 러시아는 올해 헌법을 개정해 자국이 공식 병합한 영토를 양도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향후 정권이 바뀐다 해도 이들 지역의 반환을 종전 협상에 올리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영토 수복을 포기하고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현재로선 크지 않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최근 “점령지 병합은 러시아 정권과 더는 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판돈’을 너무 끌어올린 나머지 자신이 빠져나올 출구 전략을 막아버린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퀸시연구소의 유라시아 프로그램 소장인 애너톨 라이븐은 CNN에 “푸틴 대통령의 실제 목표는 서방이 심각성을 느껴 종전 합의를 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긴장의 급격한 고조는 서방의 대응을 부를 뿐만 아니라 평화 가능성도 오랫동안 배제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병합으로 핵전쟁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우크라이나가 향후 병합 지역을 수복하기 위해 공격하면, 러시아가 자국 영토에 대한 공격이라며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동향을 사전에 포착하기 위해 정보 감시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서방에서는 이날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한 러시아의 영토 병합을 인정할 수 없으며, 이번 조치가 러시아의 국제적 고립만 더 심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국무부에서 열린 남태평양 도서국과의 정상회의에서 “미국은 절대, 절대, 절대로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른바 주민투표는 완전한 가짜이며 그 결과 역시 모스크바가 조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해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러시아의 영토 병합이) 절대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러시아는 향후 동맹을 규합하며 영토 병합의 정당성 확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친러시아 성향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의 합병 주민투표가 투명하게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화상으로 개최된 국가안보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화상으로 개최된 국가안보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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