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트러스 총리, 44일 만에 사임

박용하 기자

“경제·국제적 위기 상황 속 임무 수행할 수 없어” 공식 회견

‘제2의 대처’ 기대 속 취임…부자 감세안으로 경제 혼란 불러

재무·내무 장관 잇단 사임, 이미 내각 흔들…내주 후임 결정

‘허울만 남은 총리’의 마지막 회견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런던 총리 관저 앞에서 사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취임 44일 만에 물러난 트러스 총리는 영국 역대 최단명 총리가 됐다. 런던 | AP연합뉴스

‘허울만 남은 총리’의 마지막 회견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런던 총리 관저 앞에서 사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취임 44일 만에 물러난 트러스 총리는 영국 역대 최단명 총리가 됐다. 런던 | AP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46)가 20일(현지시간) 사임했다. 감세정책의 후폭풍으로 정치적 권위가 요동치며 임명된 지 44일 만에 물러났다. 그는 영국 최초의 40대 여성 총리로 제2의 마거릿 대처가 될지 주목받았지만 역대 최단명 총리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그는 성명에서 “나는 경제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기에 취임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영국의 경제 침체 등의 문제를 거론했다. 이어 그는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선출된 (총리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보수당 대표직을 사임한다는 뜻을 국왕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내각제인 영국은 여당 대표가 바뀌면 총리가 교체된다.

트러스 총리가 사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부자 감세 등 경제정책 관련 실책이었다. 그는 투자 여력이 있는 부자와 기업의 세금을 줄여주면 투자로 이어져 전체 경제가 크게 성장한다는 낙수이론을 신봉하며 지난 9월 연 450억파운드(약 73조원) 규모의 감세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상황에 맞지 않는 감세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파운드화 가치와 영국 국채 가격은 폭락했다.

논란이 되자 트러스 총리는 지난 14일 금융시장에 혼란을 빚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쿼지 콰텡 당시 재무장관을 전격 경질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총리의 입지는 불안했다. 콰텡 장관의 후임으로 취임한 제러미 헌트 신임 재무장관은 감세안 등 트러스 총리의 경제정책을 대부분 폐기했다. 19일에는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장관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브레이버먼 장관까지 사임하자 트러스 총리의 권위는 심하게 흔들렸다. 일각에선 그를 두고 ‘허울만 남은 총리(Prime Minister In Name Only·PINO)’라는 평가를 내놨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이어졌다. 앞서 ‘파티 게이트’ 등으로 신망을 잃은 존슨 전 총리는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이 사표를 던지고 이어 내각이 줄줄이 사임하자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트러스 총리는 전날 하원에서 열린 총리 질의응답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야당 측이 사임을 요구하자 “나는 싸우는 사람이며, 그만두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사임설을 일축했다. 또 실수를 다시 사과하며 “경제적 안정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가이익을 위해 행동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보수당 1922위원회의 그레이엄 브래디 의장을 만난 뒤 사임으로 돌아섰다.

이날 사임으로 트러스 총리는 영국 최단명 총리로 기록됐다. 그전까지 가장 짧게 재임한 총리는 19세기 초반의 조지 캐닝으로, 취임 119일 만에 사망했다. 그 뒤엔 선거에서 패배해 보수당에 정권을 내준 노동당 고든 브라운(2년 318일), 히틀러와 회담 후 평화를 자신해 훗날 망신을 산 네빌 체임벌린(2년 348일) 등이 임기가 짧은 편이었다.

트러스 총리는 앞서 지난 5일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새 총리로 확정된 뒤 제2의 대처로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다. 강성 이미지인 그는 대처 전 총리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아왔다. 하지만 대처 전 총리의 길을 걷지 못한 채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하게 됐다. 그가 따라 하고 싶어 한 ‘철의 여인’ 대처 전 총리는 11년 208일간 재임한 바 있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자신의 후임자를 뽑는 선거가 다음주 있을 예정이며, 차기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 자신은 직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후임으로는 헌트 장관과 수낵 전 재무장관, 벤 월리스 국방장관,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가 거론되고 있다. 최근 보수당원 5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32%가 존슨 전 총리를 적합한 후임자로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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