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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모두 목소리 낼 수 있을 것”…재미 중국인 연대시위

박은하 기자

11월29일 뉴욕에서 열린 집회

“자유” “위구르 연대” 목소리

위야오·황민혁씨가 전한 현장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주뉴욕 중국 총영사관 인근 거리가 추모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황민혁 제공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주뉴욕 중국 총영사관 인근 거리가 추모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황민혁 제공

미국 뉴저지주 저지시티에 사는 위야오씨(37)는 남편 황민혁씨(41)와 함께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주뉴욕 중국 총영사관 앞을 찾았다. 재미 중국인들의 제로 코로나 반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에서 태어나 10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 온 위씨가 시위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씨는 “중국과 전 세계에서 열린 저항 움직임에 깊이 감명받았다”며 “중국에 있는 사람들이 경찰에 체포되거나 구타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우리는 침묵에 대체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꽃 놓으며 추모…위구르인 연설에 공감

황씨에 따르면 집회는 오후 7시쯤 시작됐다.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시위대는 영사관 인근 허드슨강변의 공터로 이동했다. 시민들은 꽃, 촛불, 백지 또는 자신만의 구호가 적힌 A4 용지를 들고나왔다. 지난 주말 시위 후 철거된 중국 상하이 우루무치중루 거리 안내 표지판 모양의 피켓,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닮았다는 말이 나온 뒤 중국에서 판매가 금지된 곰돌이 푸 저금통 등을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다. 국제 사회주의자를 상징하는 노래이자 중국에서는 국가로 지정된 인터내셔널가와 뮤지컬 <레미제라블> 수록곡 ‘두 유 히어 더 피플 싱’ 가사를 인쇄해 나눠주는 사람도 있었다.

시민들은 차례차례 바닥에 꽃을 놓으며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를 추도했다. 열띤 발언이 이어졌다. 중국에 있는 가족의 안전을 우려하거나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이 있어 가면을 쓰고 나온 사람도 있었지만 연단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실명을 밝혔다. 황씨는 “자신이 위구르인이라고 밝힌 한 연사가 ‘이전에 한족들에게 우리가 겪는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아무도 믿지 않았다. 지금은 믿느냐’고 묻자 모두 큰 소리로 ‘믿는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주뉴욕 중국 총영사관 인근에서 열린 추모집회에 곰돌이 푸 저금통을 들고나온 중국계 시민이 촛불을 밝히며 우루무치 화재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황민혁 제공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주뉴욕 중국 총영사관 인근에서 열린 추모집회에 곰돌이 푸 저금통을 들고나온 중국계 시민이 촛불을 밝히며 우루무치 화재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황민혁 제공

해외에 살면서 시위하는 이유

많은 이들이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으로서 시위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한 참석자는 “아무도 듣지 않는데 여기서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친구가 말했다. 하지만 우루무치에서 화재로 죽은 사람들이 말하겠나? 구이저우 버스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말하겠나? 가난으로 기본 생활도 위협받는 사람들이 말할 수 있나?”라며 여러 고통받는 사람들을 열거한 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여기서 그들을 위해 말하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군중을 향해 “여러분은 중국으로 돌아가서도 항의 시위에 참석하겠느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주뉴욕 중국 총영사관 인근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자신의 구호를 들어서 보여주고 있다. ‘상하이, 위구르, 티벳, 홍콩, 타이완, 이란, 우크라이나와 함께 서겠다. 자유를 위해 싸우자’고 적혀 있다. /황민혁 제공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주뉴욕 중국 총영사관 인근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자신의 구호를 들어서 보여주고 있다. ‘상하이, 위구르, 티벳, 홍콩, 타이완, 이란, 우크라이나와 함께 서겠다. 자유를 위해 싸우자’고 적혀 있다. /황민혁 제공

당국의 방역정책과 시 주석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황씨가 제공한 현장 영상에서 한 남성은 “우리는 진짜 과학을 원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한 명이 과학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한다. 공산당이 물러나고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는 몰라도 지금 우리는 당장 일자리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생존 자체도 문제가 됐다. 집도 가족도 잃게 됐다”며 열변을 토했다. 시위대가 함께 “시진핑은 물러나라” “자유 만세” “민주 만세”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조류가 밀려올 때 이성, 문명, 인민의 편을 선택하길 바란다.

- 총르윈(叢日云) 중국정법대 교수

한 시민은 총르윈(叢日云) 중국정법대 교수의 2013년 졸업 축사를 그대로 읽었다. 중국에서 발표 당시 화제가 됐던 구절이었다. 황씨는 이 연설이 시위 현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고 전했다.

“밀려오는 탁한 물결에 맞서 항상 저항할 수 없다면 가끔 저항할 수 있고,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없다면 소극적으로 저항할 수 있고, 용감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감히 함축적으로도 표현할 수도 없다면 침묵을 선택할 수도 있다. 침묵이 아니라 협력을 택한다면 수위를 좀 낮출 수도 있다. 능동적으로 또는 강제로 나쁜 일을 할 때 마음속에 약간의 불안과 죄책감을 가질 수 있겠는가. 불안과 죄책감은 인간성의 표시다. 저항하지 않더라도 저항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가져야 하고, 존경심이 없더라도 최소한 등 뒤에서 화살을 쏘지 말 것이며, 그의 발을 걸어 악인을 돕는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들이 조류가 밀려올 때 이성, 문명, 인민의 편을 선택하길 바란다.”

“현수막 시위 영감 …중국인 성장할 것”

지난달 29일 주뉴욕 중국 총영사관 인근에서 중국계 시민들이 우루무치 화재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황민혁 제공

지난달 29일 주뉴욕 중국 총영사관 인근에서 중국계 시민들이 우루무치 화재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황민혁 제공

시위는 약 3시간 가량 진행됐다. 위씨는 시위 현장에서 들은 연설 가운데 공감 가는 대목으로 “지금까지 여러 시위에 나가봤지만 다 미국인들의 시위였다. 중국인인 것이 부끄러웠는데 이 자리에서 드디어 내가 중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꼽았다.

그는 “한 달 전만 해도 중국인들이 ‘시진핑은 물러나라’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 저항을 독려하는 것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쓰퉁차오 현수막 시위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줬다”며 “중국인에 대한 편견은 중국인이 성장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지금 침묵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자신의 목소리를 말하게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이날 뉴욕 중국 영사관 앞 시위에 약 400명이 참석했으며 시카고의 중국 영사관, 하버드대 등에서도 중국 유학생 등이 중심이 된 시위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서울, 도쿄 등지에서도 중국인들의 연대 집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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